[다산칼럼] 드라마 '선덕여왕'과 역사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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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자 기록만으로 재위16년 그려
허구 많지만 역사관심 제고 계기로
허구 많지만 역사관심 제고 계기로
'海東六龍이 나라샤 일마다 天福이시니, 古聖이 同符하시니…'(<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1장)
그런데 나흘 전 만난 내 친구는 '해동육룡'에 흥분해 있었다. 어느 유명한 기자의 글에 해동6룡을 조선 왕조의 첫 여섯 임금(태조,정종,태종,세종,문종,단종)이라 잘못 썼더란 푸념이었다. 세종 27년(1445)에 완성된 <용비어천가>에 문종과 단종이 주인공으로 들어간 것은 물론 망발이다.
설마 하며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어럽쇼! '해동육룡'이 제대로 소개돼 있지 않은가? 조선 왕조 개창에 기여한 4명의 조상(목조,익조,도조,환조)과 태조,태종을 가리킨다는 올바른 설명이었다. 친구에게 "자네 실수했네!"라고 전화해 주려는데 얼핏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친구가 댄 그 글의 필자와 인터넷판에서 본 필자가 이름이 다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시 그 잡지의 pdf 파일을 찾아보고서야 친구가 옳았음을 알게 됐다. A라는 기자는 분명 해동육룡을 태조 이후의 여섯 임금으로 써놓았는데,인터넷판은 그 부분만 고쳐 필자를 A에서 B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그 친구는 흥분해 있었지만,나는 이런 일에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나도 그런 실수를 더러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 전공자도 아닌 A가 수필을 쓰며 옛 지식을 동원하다가 잠깐 실수를 한 것일 터이다.
이야기가 바뀌지만,그 며칠 전 나는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한국과학사 한 자락을 강의했다. 공무원들을 위한 '인문학과정'은 3일간 9개 강의로 돼 있는데,한국사와 서양사도 있었다. 그런데 강의안을 훑어보다가 나는 조금 놀랐다. 한국사는 주로 우리 선조들의 기록 정신,공법(貢法),법과 인권 등을 소개한 다음 3분의 2 정도는 과학사를 다루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서양사는 대항해 이래 세계 문명의 충돌과 융화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이미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정치경제에서 문화와 문명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권 다툼과 민족운동,당파 싸움과 자본주의 맹아,민중사관 등을 주제로 삼던 역사관이 다양화하면서 고고미술사,과학사,문명문화사 등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그런 당연한 역사 감각의 변화는 역사 드라마의 흥행으로도 나타난다.
TV 드라마에 역사극이 상당수를 점하고 일부는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반영한 것이 분명하다. 아마 이 역사극의 상당 부분에 위의 '해동육룡' 같은 실수가 들어있을 듯하다.
역사 드라마는 상당 부분이 허구(픽션)로 짜여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사는 항상 사실의 극히 일부밖에 전하지 않기 때문에,그 엉성한 사실들 사이를 어떻게든 연결시켜야만 이야기가 구성된다. 오래 전의 이야기일수록 허구로 채워질 공간은 더 크고,그 때문에 작가는 더 많은 상상의 자유를 누린다. 최근 인기 속에 방송되는 '선덕여왕' 역시 마찬가지다. <삼국사기>는 선덕여왕의 재위(631~647년) 16년 동안을 한자로 2000자의 기록만 남기고 있다. 한글 번역이 5000자도 못 된다. 200자 원고지로 치면 25장,아주 짧은 단편소설도 되기 어렵다. 물론 그 밖의 사료가 더 있기는 하지만,제대로 된 이야기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가! 작가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16년,거의 6000일 동안의 일을 꾸며낼 수 있을 테니.그렇게 허구의 세계를 헤매노라면 당연히 신라판 '해동육룡'이 자주 나올 수도 있을 터다. 그런들 어떠리! 이리하여 우리들의 역사의식이 높아지면,그만큼 우리 문화 수준도 향상될 것이니 말이다.
<용비어천가>의 제2장은 바로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찬양이다. 우리 모두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져 우리 문화의 수준을 높여갔으면 좋겠다.
박성례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그런데 나흘 전 만난 내 친구는 '해동육룡'에 흥분해 있었다. 어느 유명한 기자의 글에 해동6룡을 조선 왕조의 첫 여섯 임금(태조,정종,태종,세종,문종,단종)이라 잘못 썼더란 푸념이었다. 세종 27년(1445)에 완성된 <용비어천가>에 문종과 단종이 주인공으로 들어간 것은 물론 망발이다.
설마 하며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어럽쇼! '해동육룡'이 제대로 소개돼 있지 않은가? 조선 왕조 개창에 기여한 4명의 조상(목조,익조,도조,환조)과 태조,태종을 가리킨다는 올바른 설명이었다. 친구에게 "자네 실수했네!"라고 전화해 주려는데 얼핏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친구가 댄 그 글의 필자와 인터넷판에서 본 필자가 이름이 다른 것이 마음에 걸렸다. 다시 그 잡지의 pdf 파일을 찾아보고서야 친구가 옳았음을 알게 됐다. A라는 기자는 분명 해동육룡을 태조 이후의 여섯 임금으로 써놓았는데,인터넷판은 그 부분만 고쳐 필자를 A에서 B로 바꿔 놓았던 것이다.
그 친구는 흥분해 있었지만,나는 이런 일에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나도 그런 실수를 더러 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 전공자도 아닌 A가 수필을 쓰며 옛 지식을 동원하다가 잠깐 실수를 한 것일 터이다.
이야기가 바뀌지만,그 며칠 전 나는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한국과학사 한 자락을 강의했다. 공무원들을 위한 '인문학과정'은 3일간 9개 강의로 돼 있는데,한국사와 서양사도 있었다. 그런데 강의안을 훑어보다가 나는 조금 놀랐다. 한국사는 주로 우리 선조들의 기록 정신,공법(貢法),법과 인권 등을 소개한 다음 3분의 2 정도는 과학사를 다루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서양사는 대항해 이래 세계 문명의 충돌과 융화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이미 역사에 대한 관심이 정치경제에서 문화와 문명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권 다툼과 민족운동,당파 싸움과 자본주의 맹아,민중사관 등을 주제로 삼던 역사관이 다양화하면서 고고미술사,과학사,문명문화사 등으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가고 있다. 그런 당연한 역사 감각의 변화는 역사 드라마의 흥행으로도 나타난다.
TV 드라마에 역사극이 상당수를 점하고 일부는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반영한 것이 분명하다. 아마 이 역사극의 상당 부분에 위의 '해동육룡' 같은 실수가 들어있을 듯하다.
역사 드라마는 상당 부분이 허구(픽션)로 짜여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역사는 항상 사실의 극히 일부밖에 전하지 않기 때문에,그 엉성한 사실들 사이를 어떻게든 연결시켜야만 이야기가 구성된다. 오래 전의 이야기일수록 허구로 채워질 공간은 더 크고,그 때문에 작가는 더 많은 상상의 자유를 누린다. 최근 인기 속에 방송되는 '선덕여왕' 역시 마찬가지다. <삼국사기>는 선덕여왕의 재위(631~647년) 16년 동안을 한자로 2000자의 기록만 남기고 있다. 한글 번역이 5000자도 못 된다. 200자 원고지로 치면 25장,아주 짧은 단편소설도 되기 어렵다. 물론 그 밖의 사료가 더 있기는 하지만,제대로 된 이야기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가! 작가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16년,거의 6000일 동안의 일을 꾸며낼 수 있을 테니.그렇게 허구의 세계를 헤매노라면 당연히 신라판 '해동육룡'이 자주 나올 수도 있을 터다. 그런들 어떠리! 이리하여 우리들의 역사의식이 높아지면,그만큼 우리 문화 수준도 향상될 것이니 말이다.
<용비어천가>의 제2장은 바로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의 찬양이다. 우리 모두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져 우리 문화의 수준을 높여갔으면 좋겠다.
박성례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