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으로 뛰어난 회사가 아니라 소비자를 더 잘 이해하는 회사가 앞으로 가전산업을 이끌 것입니다. "

한스 스트라베리 일렉트로룩스 회장(52 · 사진)은 25일 스웨덴 스톡홀름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스트라베리 회장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19년 설립된 일렉트로룩스는 미국 월풀에 이어 세계 2위 가전회사다. 냉동 · 냉장고 식기세척기 세탁기 청소기 가스오븐 등 백색가전 제품을 주로 생산 판매한다. 지난해 1048억스웨덴크로나(약 17조7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 3분기 매출은 276억스웨덴크로나(4조68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4.8% 늘었으며 22억9000만스웨덴크로나(3885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등 경제위기 가운데서도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삼성 LG와 백색가전 분야의 경쟁자다. 아직도 유럽 미국 시장에서의 위상은 확고하다.

스트라베리 회장에게 그 비결을 묻자 "모든 기업들이 소비자를 존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소비자 관점을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운을 뗐다.

◆'기술보다 소비자 이해가 더 중요'

그는 "일렉트로룩스는 해마다 2000명 이상의 직원들이 직접 가정집을 방문하는 '컨슈머 인사이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003년 도입된 이 제도는 직원들이 고객의 집에 찾아가 실제로 고객들이 어떻게 가전제품을 쓰는지 세밀하게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마케팅 부서 직원뿐만 아니라 말단 공장 직원과 IT(정보기술) 보안 담당자 등 전 직원이 집에 찾아가 가족은 몇 명인지,손님은 자주 오는지부터 청소기는 어디에 두는지,세탁기는 몇 시에 돌리는지까지 일일이 물어본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심층 인터뷰인 셈이다.

일렉트로룩스는 이 제도를 운영하는 데 연간 1200만유로(216억원)를 쓰고 있다. 스트라베리 회장은 "흔히 엔지니어들은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경쟁하려 하기 때문에 고객의 시각을 잊기 쉽다"며 "실제 고객의 집을 방문하는 경험을 한 엔지니어는 태도가 바뀐다"고 했다. 그는 "동남아에선 사람들이 매일 장을 봐서 봉지째 냉장고에 쌓아두는 관습이 있는데 채소 등이 무거운 과일 주머니에 짓눌려 상하곤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자들이 냉장고 안에 봉지를 걸어놓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히트 모델인 '에르고라피도 청소기'도 컨슈머 인사이트를 통해 청소기를 '자랑할 수 있는 예쁜 가전제품'으로 변화시킨 사례"라고 덧붙였다.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

일렉트로룩스는 1960년대 진공청소기로 성공을 거둔 이후 꾸준히 인수 · 합병(M&A)으로 덩치를 키웠다. 사들인 회사만 450여개에 달한다. 이탈리아의 '자누시',독일의 'AEG' 등은 과거 일렉트로룩스의 경쟁자였지만 지금은 자회사로 포함돼 있다. 하지만 '승자의 저주'라는 말처럼 사들였다가 체한 회사는 없었을까.

스트라베리 회장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일렉트로룩스는 스칸디나비아의 작은 회사에 불과했고 스웨덴 인구는 1000만명에 그쳐 내수시장이 너무 작았다"고 했다.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사실이 분명한데 자연스럽게 수출이 늘어나길 기다리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 뻔했다"는 것.적극적인 M&A는 미래의 경쟁자들을 제거하는 효과도 낳을 수 있었다.

빠른 속도로 덩치를 키우다보니 문제도 적잖이 발생했다. 그는 "일렉트로룩스는 한때 안전벨트나 용접용 알루미늄까지 생산했다"며 "게다가 공장 위치가 제각각이고 생산비가 높은 곳에 주로 공장이 몰려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에 따라 1998년 이후 생산비가 높은 유럽 내 32개 공장을 없앴다. 그리고 동유럽과 중국 등에 8개 공장을 새로 열었다. 스트라베리 회장은 "진출한 160개국에서 원자재를 적시에 싸게 구입하고 R&D(연구개발)센터를 연결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불황에도 고가 전략 유지

경제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묻자 그는 "한 발 앞서서 선제 대응했다"고 응수했다. 구체적인 대응 전략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는 "구조조정과 경비 절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신선하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스트라베리 회장은 "새로운 영역,새 먹을거리를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가전제품을 떠나서 다른 영역에서 돈을 벌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시장점유율은 불황기에 더 늘었다. 그는 "불황기에도 제품 가격을 조금씩 인상했다"고 밝혔다. 가격을 할인하면 "기업의 허약한 체질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BMW가 폭스바겐처럼 자동차를 싸게 판다면 아무도 BMW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다. 그는 "미국에서 평균 4% 정도 가격을 올렸고 제품별로 다르지만 대략 점유율은 2%포인트가량 높아졌다"고 전했다.

일렉트로룩스의 한국 시장 점유율은 청소기의 경우 12%,주방가전 등에선 아직 10% 미만이다. 북미(25%),유럽(20%),호주(35%),브라질(25%) 등에 비하면 낮은 수치다. 삼성 LG의 영향력이 강한 탓이다. 스트라베리 회장은 "한국의 경제성장 스토리는 정말로 '판타스틱'하다"며 "일렉트로룩스가 한국 시장에서 더 성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스톡홀름(스웨덴)=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스트라베리 회장=1983년 일렉트로룩스에 입사해 26년간 한 회사에 몸담았다. 2000년 최고조직책임자(COO)를 거쳐 2002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1957년 스웨덴 베스테르비크에서 태어나 예테보리의 챌머스공대에서 과학 · 공학 석사학위(1981)를 받았다. 자동차 디자인과 사냥 요트 테니스 등 스포츠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