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오일뱅크 최대주주인 아랍에미리트(UAE) IPIC(국영석유투자회사)가 현대오일뱅크 지분 70%를 현대중공업에 넘기라는 싱가포르 국제중재재판소(ICC)의 중재결정 이행을 거부했다. 지분을 넘겨받으려면 한국 법원의 집행 판결을 별도로 받아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이 경영권을 되찾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IPIC는 26일 발표한 입장 표명서에서 "중재재판소의 판정은 현대 측 주주들이 한국 법원으로부터 승인 및 집행에 대한 확정 판결을 받기 전까지 아무런 법률적 효력이 없다"며 불복 의사를 나타냈다. IPIC가 지난 12일 중재재판소 판결 이후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PIC는 "중재판정의 일부 핵심 사실 관계 및 법률적인 결론에 오류가 있다고 믿고 있고,그런 이유로 중재판정이 한국에서 집행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제한 뒤 "이는 최종적으로 한국 법원이 판단할 문제이며 현대 측 주주들도 같은 태도로 임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IPIC는 이어 한국 법원의 승인 및 집행 결정을 받기 전까지 현대오일뱅크의 지배구조는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현대중공업은 IPIC의 이 같은 입장 표명에 대해 "중재와 관련한 주주협약 규정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라며 법적 조치 등 강력대응 방침을 밝혔다. 현대중공업 측은 "국제중재재판소의 판정 결과가 한국 법원에 의해 뒤집힌 전례가 없다"며 "주주협약에도 국제중재재판소의 중재 결정은 양 당사자를 구속하는 최종적인 판결이며,어떤 경우에도 재심리를 청구할 수 없다고 명백히 규정돼 있다"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은 소송 절차 등을 거쳐 IPIC 측이 보유한 현대오일뱅크 지분 70%와 경영권을 확보하고,중재결정 이행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도 별도로 물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국제중재재판소는 지난 12일 IPIC 측이 2003년 현대중공업과 체결한 주주 간 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했기 때문에 보유주식 전량(지분율 70% · 1억7155만7695주)을 시장가격보다 싼 주당 1만5000원에 현대중공업에 양도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IPIC는 현대오일뱅크 주식을 매각할 경우 현대중공업에 인수 우선권을 주기로 했던 주주 간 계약을 무시한 채 2007년 말 GS칼텍스 호남석유화학 등에 지분 매각을 추진,현대중공업으로부터 국제중재재판소 소송을 당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