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갤러리]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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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 '빈집' 전문
사랑은 삶의 동력(動力). 그걸 잃었음은 사지가 잘려나가고, 심장이 멈춘 거나 진배없다. 불꽃 같은 열망이 사그라드니 세상을 향해 열려있던 창(窓)도 닫히게 되고. 졸지에 빈집에 갇힌 신세. 그 참담한 추락은 '…쓰네' '…밤들아' '…잠그네' 등의 타령조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모든 게 끝났다는 탄식. 소리 내 읽어보면 요절 시인의 쓸쓸함을 절절하게 느껴볼 수 있을 터.
남궁 덕 문화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