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공장에 날아든 파리떼를 없애 주세요. "

초겨울로 접어든 2007년 11월,해충 방제업체 벡스원에 때 아닌 파리 구제 신청이 접수됐다. 경기도 모처에 신축한 식품공장에 파리떼가 날아들어 식품생산 및 위생관리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것.신청이 접수된 다음 날 함지훈 실장(33)은 바로 직원 3명과 함께 공장 인근에 방을 얻고 원인 분석에 나섰다.

2개월여에 걸친 '초겨울 파리떼'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해충을 유인해 가두는 포충기 등을 이용해 공장 안의 파리는 이틀 만에 깨끗이 정리됐지만 파리는 인근에서 계속 날아들었다. 추운 날씨에 파리떼라니!

현장조사를 통해 곧 원인이 밝혀졌다. 공장으로부터 300~400m 떨어진 곳에 사슴목장과 돼지우리 등이 있었고 여기서 서식하던 파리가 따뜻한 데다 음식냄새가 나는 식품공장으로 날아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공장과 인근 환경부터 개선했다. 창문에는 자외선 차단 코팅제를 입혀 바깥에서 파리를 유인하지 못하게 했고,방충망도 3배 이상 촘촘한 것으로 바꿨다. 농가와 공장 사이에 있어서 파리들이 날아오는 과정에서 간이 휴게소 역할을 했던 쓰레기장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밀폐구조로 바꿔 해충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 공장 주변에는 파리들이 싫어하는 약품을 뿌려 접근을 막았다. 문제의 근원인 사슴목장 등에도 방역작업을 하고 동물 배설물 처리 등을 위생적으로 하기 위한 방안을 권유해 해충의 번식을 줄였다.

뿌연 연기를 뿌리고 다니는 연막차나 건물 사이에 약을 치는 일로만 생각하기 쉬운 해충방제업.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 과학수사대(CSI)를 연상케 하는 원인 분석과 방제기술이 있다. 그 주역은 함 실장과 같은 해충방제사들이다.

▼방제업을 하신다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깔끔한 인상이네요.

"해충방제업은 '약 친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3D 업종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상당한 지식기반 산업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경우 최소 석사학위 이상을 가진 고학력자들이 종사하고 있지요. 저도 미국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해충의 생태와 서식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필요한 데다 인체나 주위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해충을 잡기 위해선 많은 전문지식이 필요해요. "

미국 유학까지 갔다와서 해충방제업에 뛰어든 이유가 뭡니까.

"벡스원의 대표(함선학)가 제 부친입니다. 아버지는 30년 전 논두렁에 앉은 참새를 쫓는 '매 로보트'를 개발했는데 이 모델이 일본 해충방제회사에 수출되면서 관련 업종에 눈을 떠 한 우물을 파고 계시죠.저도 고교 때부터 아버지 회사에서 방제작업을 돕다가 일에 흥미를 느끼게 돼 본격적으로 합류하게 됐어요. "

해충방제업에도 전문 기자재가 있다니 놀랍군요.

"대표적인 것으로 식품공장 내부에서 쓰는 방제기구가 있는데,이산화탄소 가스를 분사해 해충을 영하 78도까지 얼려 죽입니다. 이산화탄소는 식품에 해를 끼치지 않는 데다 잔류물도 남지 않아 안전합니다. 식품에 있는 유충이나 알 등을 대상으로 사용해요. 1차 고객은 기업은 물론 2차 고객인 기업의 소비자까지 생각해야 하므로 기술적으로 끊임없이 개선할 게 많아요. "

가정이나 식당보다는 기업체가 주요 고객인가봐요.


"가정과 식당을 대상으로 한 해충방제는 경쟁이 치열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해충방제업에는 전문 자격증도,진입 장벽도 없어 기술보다는 가격 경쟁이 중심이 되다보니 수익성도 크게 낮았거든요. 그래서 벡스원은 10년 전부터 공장과 병원 등 법인을 대상으로 해충 방제를 하고 있어요. "

▼최근 몇몇 식품에서 나왔던 구더기는 어떤 건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구더기가 아니라 화랑궁나방의 유충입니다. 워낙 작은 데다 식품의 원료가 되는 밀 등의 곡물류에 많이 서식하다보니 식품에서도 알이 부화해 그 유충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파리나 바퀴벌레처럼 인체에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보기에 혐오감을 주므로 식품업체들은 차단하느라 열을 올리죠."

▼해충 방제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웠던 기억이 있나요.

"수도권의 어떤 식품공장에서 초파리가 나왔는데 어렵게 서식처를 찾아냈으나 또다른 문제가 생겼어요. 그 공장에는 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은 양의 곰팡이가 있었는데 초파리들이 그 곰팡이와 미생물을 먹이로 살고 있었던 겁니다. 이처럼 해충을 없애려면 해충의 먹이가 되는 곰팡이나 세균부터 잡아야 해요. 그래서 요즘 선진국의 해충 방제업은 미생물 살균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어요. "

병원 수술실에서도 작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위생관리가 철저해서 전문업체가 해충을 관리하지 않아도 충분히 방제가 됩니다. 문제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세균 등으로 인한 교차감염입니다. 요즘 방제업은 살균까지 분야가 확대되고 있는데 우리가 병원에서 하는 작업도 살균 분야예요. 최근 신종플루가 확산되면서 일감이 늘어난 것도 비슷한 이유죠.최근에는 국내 굴지의 IT기업 본사에서 공기 살균을 통한 신종플루 예방 관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살균은 살충보다 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좀더 세밀합니다. 해충 방제의 경우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관리를 하면 되지만 미생물은 4~5시간만 방치해도 급속도로 증식하니까요. 거의 매일 관리해야 해요. 바람물질이 생길 수 있는 오존이나 그늘진 곳은 살균하지 못하는 자외선 대신 도입한 게 공간살균 시스템이죠.일반 장비에서 분사하는 살균제 입자는 20~50㎛인데 비해 공간살균 시스템은 이를 10㎛ 이하로 줄여 40분 이상 살균제가 공기속에 떠 있으면서 살균할 수 있어요. "

일반인들이 모르는 해충 방제기술이 많겠네요.

"단순히 해충을 죽이는 것보다는 주위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많이 개발되고 있어요. 가령 모기의 경우 친환경 방제제를 통해 직접적으로 죽이지 않고 유충 단계에서 성장을 멈추게 만들죠.환경도 지키면서 모기가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쥐약도 저독성을 쓰면 바로 죽지 않고 4,5일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서 차차 죽음에 이릅니다. 이 과정에서 쥐의 눈이 서서히 멀게 되면서 밝은 곳으로 나와 죽도록 해 시체 부패에 따른 피해를 막습니다. 그래도 3~5%는 아무데서나 죽다보니 식품공장 등에서는 쥐약보다는 끈끈이통을 설치해 포획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죠."

▼항상 해충을 다루다보니 남다른 철학이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해충도 비슷합니다. 어느 정도까지 줄일 필요는 있지만 모두 없애려고 하다보면 그 공간에서 사는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요. 완전 박멸을 하려면 그만큼 독한 약을 써야 하고 인체에도 해로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해충 피해를 줄이는 한편 안전도 확보하려면 해충을 무조건 박멸의 대상으로 볼 게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는 허용하고 공존의 대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