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선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을 회사 측에서 지급하는 나라가 거의 없다. 미국과 일본 등에선 오히려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다.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원칙대로 시행하는 것이야말로 노사관계 선진화를 이룰 중요 토대라는 지적이 나오는 근거다.
◆미국 일본에선 부당노동행위로 처벌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1991년 다년간 지급해 온 전임자 임금은 경비 지원에 해당한다며 지급을 중지하는 게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전임자에게는 임금 청구권이 없으며,임금은 노조에서 부담하는 게 원칙이라는 판단이다. 노조 전임 기간은 단체협약에 의해 무급휴직 처리하는 게 맞다는 판결도 내렸다. 이후 일본에선 노조 경비를 지원하는 회사가 발견될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다. 노조가 회사로부터 경비를 지원받으면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노조에 대한 회사 측의 재정 지원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제하고 있다. 노조도 회사 측의 금전 지원을 받으면 1만달러 이하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진다. 상급단체 노조 간부의 임금은 지역노조 조합원의 조합비 중 상급단체에 제공되는 조합비와 상급단체 자체 자산으로 충당한다. 생산직 노조 간부가 상급단체에 파견되더라도 자신이 소속한 회사에서 임금 등을 지원하는 경우는 없다.
물론 근로자 고충처리,노사갈등 중재,산업안전 관련 업무에 참여하는 조합원에 대해선 회사가 담당해야 할 업무를 공동 수행하는 것으로 해석해 임금을 지원하는 게 허용돼 있다. 그렇지만 고충처리에 사용한 시간이 지나치게 많은데도 사용자가 그 시간을 모두 유급으로 인정하거나,노조원 모집활동에 소요된 비용을 지원하는 행위에 대해선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한다.
◆유럽은 교섭 · 쟁의 참여 않는 평의회 대표만 부분 지원
노조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유럽 국가들도 사측의 노조 지원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독일은 각 산업별 노조에 상근하는 노조 간부나 직원의 임금은 노조 재정에서 충당하도록 하고 있다. 노조 업무를 전담하는 전임자는 노조에 의해 임명되기 때문에 전임자에 대한 임금 지급을 둘러싼 법적 분쟁은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기업단위로 구성돼 있는 종업원평의회의 전임자는 △종업원 200~500명 사업장 1명 △501~900명 2명 △901~1500명 3명 △1501~2000명 4명 등으로 유급을 인정하고 있다. 이들은 사업장 내 복지문제 해결 등에 참여하지만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는 할 수 없다.
영국은 사용자로부터 교섭당사자로 인정받은 노조의 직장대표에 대해 노조활동에 필요한 시간만을 유급으로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법으로 기업위원회 위원,종업원 대표,기업 내 노조대표에게 각각 월 10~20시간의 활동만을 유급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제흐름이 이런 만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게 기업들의 생각이다. 노조는 이에 대해 전임자 임금 지급은 노사 자율 결정 사항이라고 반박한다. 그렇지만 노조의 자주성을 주장하면서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받는 것은 모순이라는 게 기업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밝힌 대로 노조 재정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당장 적용하는 게 어렵다면,대기업과 공기업부터라도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시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박영범 한성대 교수는 "노조 전임자 임금은 노조 재정에서 스스로 충당해야 합리적 노동운동이 정착될 수 있다"며 "내년 1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시행에 맞춰 우리 노조도 노동운동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위해서라도 일대 혁신을 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