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작년 말 불거진 글로벌 경제 위기를 가장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 올 한 해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살렸다. 비결은 수출이다. IT,자동차,조선,철강,석유화학 등에서 수출 기업들이 경쟁자들을 제치고 시장 점유율을 넓히며 올해 한국의 수출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할 전망이다. G20(주요 20개국) 회의를 유치한 것 역시 수출 한국호(號)의 위상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IT·자동차 약진…사상 첫 10위권 진입

올해 수출은 험로 일색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작년 말 이후 글로벌 경기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올 1~8월 세계 교역물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5% 감소했다. 이에 따라 한국도 시련을 면치 못했다. 수출 증가율이 2001년 이후 8년 만에 감소세로 반전되기도 했다.

하지만 수출 기업들은 위기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경쟁자들이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안으로 움츠리는 동안 과감히 마케팅을 확대했고,품질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해갔다. 게다가 환율도 우호적으로 작용했다.

품목별로는 IT 제품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반도체,LCD,평판TV,조선 등 세계 1위 품목에 IT가 3개나 포함됐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의 D램 점유율은 2006년 44.8%에서 올 2분기 61%로 급증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합친 LCD 점유율(올해 2분기 기준)은 55.4%로 1년 전과 비교해 11%포인트 높아졌다. 휴대폰 분야에선 노키아를 맹추격,한국의 지위가 2위까지 올랐다. 2000년 수출 순위 77위에 불과했던 디스플레이는 지난해 6위에 이어 금년에는 4위까지 상승했다.

올 들어 신규 수주가 크게 줄었지만 조선 산업도 지난 2~3년간 확보한 주문량을 기반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수출 순위 1위를 유지했다. 현대 · 기아자동차가 5위권 업체로 성장한 것 역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반면 지난해 고유가 덕분에 2위를 차지했던 석유제품은 올해 유가 하락으로 6위로 떨어졌다.

#저력 보여준 수출 중소기업

대기업들이 주요 전투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면 수출 강소 기업들은 누구도 쳐다보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을 개척,미래에 수확할 '수출 노다지'의 싹을 뿌리고 있다. 정밀 대형 단조제품을 생산하는 현대단조가 경남 함안에 총 350억원을 투자,기존 공장 8배 규모의 최신형 풍력 발전 설비를 갖추며 '그린 컴퍼니'로 성공적으로 전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 최초로 항공용 항행안전무선장비인 DVOR와 DME의 개발에 성공,작년 부탄 수출에 성공한 모피언스,체외진단시약의 원료 중 중요한 골드 콘주게이트(Gold Conjugate)를 세계 세 번째로 자체 개발해 수입대체 효과를 거둔 에스디 등도 마찬가지 공로를 인정받았다.

#경기 회복세 타고 내년 수출도 '맑음'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9월 이후로 수출 실적이 작년 수준을 웃돌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항공이 지난 9월 월간 항공 물동량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을 정도다. 덕분에 올해 무역 수지흑자는 338억달러(10월까지 누계)로 사상 최대치(1998년 390억달러)를 무난히 넘을 전망이다. 이 같은 추세를 이어간다면 내년 수출도 순풍을 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경태 국제무역연구원장은 "내년 수출은 올해보다 13.3% 증가한 4100억달러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세계 경기가 회복세로 접어든 데다 수출 단가도 상승하고 있고,자원 부국들의 수입 수요가 늘면서 1년 만에 두 자릿수 증가율을 달성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수출 비중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의 경기 회복이 빠르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도 수출 확대를 점치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리스크 역시 상존한다. 각국 정부가 출구 전략을 언제 쓸 것이냐가 관건이다. 올해 수출이 비교적 선방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의 가전 하향 정책 등 유럽,미국,일본,중국 등 주요 국가들이 경기 진작을 위해 막대한 재정 지원을 쏟아낸 덕분이다.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는 점 역시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G20 정상들이 보호무역 방지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경태 원장은 "녹색 산업이 양날의 칼이라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동차,IT제품,섬유 등 각 분야에 '친환경'이 화두로 등장하면서 녹색 산업이 새롭게 창출되고 있는데 비해 각국이 녹색 산업을 일종의 환경 관련 기술 장벽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 원장은 "관련 법규,제도를 선제적으로 갖추고 있는 미국,EU 등이 중심이 된 일종의 선진국형 규제"라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