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최하위 점수를 맞아 기관장이 해임되는 수모까지 당했던 영화진흥위원회가 6개월도 안 돼 공기업 개혁의 성공사례로 꼽혔다. 이명박 대통령도 77개 주요 공기업 기관장들 앞에서 영진위의 사례를 본받으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지난 몇 달간 영진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영진위는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노조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체결된 단협 때문에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공공기관 개혁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대못' 기관으로 지목됐다.

2005년 안정숙 전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도입한 '팀장 내부공모제'가 대표적 사례다. 팀장 평가위원은 총 7명으로 이 가운데 5명이 노조 간부들이며 회사 측 경영진은 2명에 불과했다. 노조가 마음만 먹으면 팀장급 인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던 구조다. 이 때문에 지난해 현 정부 들어 새로 취임한 강한섭 전 위원장은 뿌리 깊은 노조문제를 개혁하기 위해 단협 조항 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노조의 저항이 워낙 거세 뜻대로 관철시키지 못했다. 결국 이게 빌미가 돼 지난 6월 기관장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고 강 전 위원장은 옷을 벗어야 했다. 영진위는 기관 평가에서도 최하위를 받아 직원 전체의 성과급이 깎이는 고통을 겪었다.

이런 영진위에 개혁의 실마리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지난 7월 말.최악의 성적표에 충격을 받은 노사가 대립각을 접고 대화에 나서면서부터다. 영진위 관계자는 "위원장 해임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조직 전체가 곤경에 처하면서 노조도 양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인사 및 경영권 침해조항 등 과거 10년간 철옹성과 같았던 단협을 노사 간 대화로 바꾸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노조는 더 이상 인사나 경영에 간섭하지 않고 인사위원회에서도 노조 몫을 배제키로 했다. 노조 전임도 2명에서 1명으로 줄이고 불합리하다고 판단된 90여개 단협조항을 삭제했다.

조희문 현 위원장(사진)이 취임한 9월부터는 개혁에 속도를 더했다. 조 위원장은 '돌쇠''고집불통'이란 별명답게 개혁 과제를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정규직 직원 10% 감축,대졸 초임 16.2% 축소 등 정부가 영진위에 요구했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착착 실천해나갔다.

노조의 협조도 영진위의 개혁에 힘을 실어줬다. 한인철 노조위원장은 "노조도 정부의 선진화 작업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영진위 관계자는 "내년 공기업 평가에서는 최고 점수를 받아 으뜸 공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