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행정지도에 따른 것도 담합이 되는지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1개 소주업체에 대해 2263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예고하면서 관련 업계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행정지도에 의한 가격 통제와 담합의 이중 규제

소주가격 결정은 1999년 9월 사후 신고제로 바뀌었다. 주류면허를 내주는 국세청에 가격인상폭을 전해주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은 회사가 국세청과 가격 인상폭을 상의한다. 인건비나 주정가격 외에 물가관리 여건 등을 감안해 국세청의 '실질적 허가'를 받는다.

국세청은 12개 주류 중 소주는 생필품이어서 관행적으로 업계의 얘기를 청취하고 그 과정에서 업계는 국세청과 상의해서 정해지는 가격을 행정지도로 간주한다. 행정지도는 법적 근거도 갖추고 있다. 주세법시행령 50조는 '국세청장은 주세 보전,주류 유통 관리를 위해 주류 제조자 또는 주류 판매업자에 대해 주류의 출고가격 및 가격 변경 신고 등에 관해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주업체들은 "가격 결정의 최종 권한이 있는 국세청의 의견을 따른 것일 뿐 우리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만일 국세청이 주류 출고가격에 대해 행정지도를 하지 않았다면 소주가격이 더 올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담합의 피해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는 전제로 담합 주체에 과징금을 매겨야 하는데 지금의 행정지도는 과도한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 있어 소비자가 가격 관련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찌됐든 가격 통제에 따라 업계는 순차적으로 소주 가격을 올렸고 거기에 공정위가 '담합'이라고 칼을 들이댔다. 과징금도 엄청나다. 가장 큰 회사인 진로가 1162억원의 과징금을 맞을 것으로 통보받았다.

◆맥주가격 담합에선 공정위 패소

결과적 담합이라는 공정위의 주장과 관행적 행정지도를 따랐을 뿐이라는 소주업계의 항변은 공정위가 최종적으로 과징금을 매기면 법정소송에서 승패가 판가름날 것이다. 실체적 진실을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느쪽 의견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인권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9일 연구보고서를 통해 2001년 서울고법에서 유사한 이유로 과징금을 받았던 맥주담합 재판에서 공정위가 졌다고 주장했다. 공정위는 당시 맥주 3사가 가격 인상 요인에 차이가 있었음에도 맥주 종류별 · 규격별 가격인상률이 모두 같다는 점에서 담합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고법은 맥주가격 인상은 전적으로 재정경제부와 국세청의 승인 여부에 달려 있고 종류별 · 용량별 구체적인 가격까지도 국세청과 협의를 거쳐 결정되는 점,또 재정경제부와 국세청이 맥주 3사의 가격 인상 요구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인상률만을 허용해 결과적으로 인상률이 같아진 점을 들어 공정위 패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에서도 공정위는 패소했다.

◆다양한 행정지도와 엇갈리는 판결

행정지도는 금융감독당국과 통신 관련 부처에서도 쏟아진다. 금융감독당국은 문서 형태로 남기진 않지만 대출금리 결정에 간여하고 통신 관련 부처는 시장질서 차원에서 가격 결정에 개입한다. 2005년 KT와 하나로텔레콤은 정보통신부의 행정지도를 받아 가격과 시장점유율을 조정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담합으로 판정했고 1152억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대법원도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정통부 행정지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공정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행정지도를 빌미로 담합에 대한 정당성을 내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행정지도는 어디까지나 개별 업체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준수돼야 할 사안인데도 기업들이 따로 모여서 가격과 생산량 등을 합의하는 것은 도가 지나친 것이라는 의견이다.

업계는 그러나 가격 통제를 받는 것도 마땅치 않은데 담합 혐의까지 씌워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물리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쟁법 전문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우선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소관 부처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며 "기업들이 정부의 정책 방향을 이해하고 예측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공정위와 소관 부처 간에 적절한 정책 조정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