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에 있을 때는 원금 보장에 이자까지 얹어준다며 예금을 권했는데,여기에서는 아무 대가 없이 도와 달라고 말하기가 멋쩍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어요. 돈(이자)보다 훨씬 값진 보람과 행복을 드린다며 떳떳하게 기부를 권하죠."

윤병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72 · 사진)은 요즘 마음이 바쁘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의 60~70%가 연말연시에 몰리기 때문이다. 그는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사랑의행복 온도탑 제막식'을 시작으로 앞으로 두 달간 '희망나눔 캠페인'을 벌인다. 올해 성금 목표액은 2212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27억원 늘어난 규모다. 성금은 정부 지원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불우이웃 등을 돕는 데 사용한다.

윤 회장은 "경쟁을 통해 남보다 많은 걸 얻은 사람이 진정한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남과 나눌 때"라며 우리 사회를 '배와 같은 공동운명체'라고 비유했다. 혼자만 잘 살자고 욕심 부리다 부가 한쪽으로 쏠리면 계층 간 갈등의 골이 깊어져 사회 전체가 가라앉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회가 건강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발전도 없다"며 "부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존경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회장은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기업들이 기부와 봉사를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생각하면서 기업 성금이 전체 모금액 중 65% 정도를 차지합니다. 이는 어느 선진국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이죠." 그는 그러나 기업과 개인의 기부가 반반의 균형을 이루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서민들도 참여하는 '풀뿌리 기부문화'가 확산돼야 한다는 것.

"기부는 돈 많은 사람들이 베푸는 것이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사회 구성원이면 누구나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 윤 회장은 "기초생활 수급자 중에서도 남을 돕는 이가 있다"며 "무리해서 큰 돈을 내놓기보다는 기부활동의 생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회장 자신도 라디오에서 어려운 사람 얘기가 나오면 ARS 등을 통해 작은 나눔을 실천하고,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받는 활동비 250여만원도 고스란히 내놓고 있다.

윤 회장은 평생을 금융계에 몸 담으며 한국 금융시장을 개척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 인물이다. 한국투자금융 사장,하나은행 회장,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을 지내다 지난 4월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을 맡고 있다. 이 일을 맡은 데 대해 그는 "삶에는 필연적 섭리가 있는 것 같다"며 "1980년대 후반 '기업의 사회시민운동'을 펼친 것을 계기로 메세나운동을 하게 됐고,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활동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금융이나 모금이나 돈을 매개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윤 회장은 모금회 회장을 맡으면서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사진찍기를 접었다. 대신 작은 카메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찍어댄다. "사진은 내게 일기장과 같아요. 최 기자에게도 '사랑의 열매'를 달아드릴 테니 나랑 같이 사진 한장 찍고 가세요. " 그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나눔 바이러스'를 확산시키고 있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