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매니저의 투자비밀⑬] 은퇴 후 연봉 1억 챙기려면 채권에 투자하라'-김기현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2009년 9월10일 오전 11시.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부 15층에 있는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실. 금통위는 이 자리에서 기준금리 동결여부 등 통화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만 나와도 채권가격은 순식간에 급락할 태세였다.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동에 있는 KT빌딩 17층 우리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펀드매니저 등 관계자들이 오전 11시30분에 공개될 금통위의 통화정책 발표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금통위는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시까지 기준금리를 현수준(2.00%)에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기준금리가 줄곧 하향 조정됐기 때문에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던 터였다. 한은의 정책결정기구인 금통위가 만일 기준금리를 인상했더라면 채권가격의 급락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김기현 부장(42·사진)을 비롯한 채권운용 펀드매니저들은 발표문 공개직후 단기채권(6개월, 1년, 1년 6개월 만기)을 시장에 내다팔았다. 동시에 새로운 투자 포지션을 잡았다. 금리인상을 염두해 둔 전략이다.
우리자산운용의 시장분석은 보기좋게 적중했다. 발표문이 공개된 직후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총재가 통화정책 발표문을 재해석(금리인상 가능성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고 채권시장은 요동쳤다.
채권시장에서도 1분1초를 앞다퉈 단기수익을 노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금통위가 열리는 날이다. 하지만 김 부장은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늘 차분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채권시장을 미리 분석해 단기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이미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채권시장에서는 파도보다 조류를 봐야 합니다. 바로 눈 앞에서 움직이는 파도의 높낮이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이 파도가 밀물인지 썰물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그 어떤 긴급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시장을 압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채권시장 선도자…스카우트 제의 빗발치다!
김 부장이 채권시장에 입문한 것은 올해로 16년째다. 1995년 한화경제연구소에 입사해 채권시장 분석과 금리전망 업무를 맡으면서 채권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는 당시 '본드 브리프'라는 시장분석 보고서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업계에서 그의 보고서가 '채권시장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였다.
3년 뒤인 1998년 김 부장은 삼성증권으로부터 첫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된다. 금융업계는 이미 외환위기(IMF)를 겪은 터라 금리 및 채권분석가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로 자리를 옮긴 김 부장은 7년 동안 채권분석팀 애널리스트로 활약하게 된다. 주로 채권조사 업무를 맡았으며, 채권운용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김 부장이 쌓은 업적은 대단했다. <한경 비즈니스> 등 경제 전문지가 선정한 '2002년 채권분석 베스트 애널리스트' 부문에서 잇따라 1, 2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한국은행으로부터 '한국은행 총재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채권시장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명성을 떨치던 김 부장에게 두 번째 스카우트 제의를 한 곳은 계열사인 삼성투신운용이었다.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채권운용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주위에 친한 동료들에게 채권운용을 해 보고 싶다고 간간이 말했는데 그 뒤부터 업계에서 근거 없는 루머가 돌았어요. 제가 몇몇 자산운용사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곧 이직할 것이라는 소문이었죠. 그러자 삼성투신운용에서 찾아왔어요. 다른 회사로 이직하려는 이유가 채권운용을 해보기 위해서라면 계열사인 삼성투신에서 채권운용을 맡아달라는 권유를 받게 된 것이죠. 루머로 인해 손쉽게 채권운용에 뛰어들 수 있었던 해프닝을 겪은 것이죠"
그렇게 채권운용 펀드매니저로 첫 발을 내딘 그는 2002년 1월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으로부터 세 번째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데 이어 2005년 10월에 우리자산운용으로부터 네 번째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이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에서 채권운용을 책임지고 있다. 당시 우리자산운용은 펀드매니저였던 김 부장에게 채권운용 책임자(부본부장) 자리를 내걸고 접근했었다.
이처럼 잇단 스카우트 제안을 받으며 김 부장이 채권시장에서 인정받은 이유는 그의 전략가적 기질 때문이다. 그는 채권시장 불황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항상 신(新)시장을 개척해 채권시장을 통째로 이끌어 내는 선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진가는 우리자산운용에서 제대로 발휘됐다.
◆'복리의 마술' 채권상품…호황기는 기준금리 4% 회복시
김 부장은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은퇴 후 1억 연봉자로 살고 싶다면 채권에 투자해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10년 또는 20년 이상 매년 최소 5% 이상의 고정수익을 올릴 수 있을뿐 아니라 복리의 마술까지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채권시장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비교해도 10년 또는 20년 동안 시중은행 금리를 초과하며 매년 5% 이상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상품을 찾아내기란 정말 어려워요. 가령 장기적으로 우량기업의 주식을 사서 보유한다고 해도 그 우량기업이 10년 내지 20년 동안 매년 5% 이상의 수익을 고정적으로 낼 수 있을까요."
국공채 등 채권은 국가가 사라지기 전까지 매년 5% 이상의 고정수익을 보장해 주고, 이자가 붙어 재투자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어 장기투자하면 그 수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설명이다. 채권상품의 특징인 복리의 마술이 투자매력을 높인다는 이야기다.
그는 특히 고령화·저성장 시대로 진입한 현 상황에서 은퇴 이후 보안자산으로서 채권형 상품의 가치는 갈수록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금부터 투자자산의 일부를 채권시장에 분산투자하는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채권시장이 호황기를 맞이하는 시기는 기준금리가 4% 수준까지 회복한 뒤부터 입니다. 한국경제의 최근 성장세와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4~5%대 기준금리가 정상적인 금리수준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채권투자의 적기는 바로 이때부터 입니다"
최근 채권시장 주변의 상황도 긍정적이다. 우선 2011년부터 본격화될 퇴직연금제도가 채권상품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킬 것으로 김 부장은 기대하고 있다. 국내 채권시장의 국제화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한국의 국채시장이 세계채권지수(World Global Bond Index)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 지수에 편입되면 아시아 지역통화에 대한 논의도 동시에 진행되면서 해외투자자들의 투자도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기준금리가 정상적인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채권시장이 호황을 맞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퇴직연금 및 세계채권지수 편입 등 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한 시장주변 상황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채권을 사려는 수요자가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투자자(최소 10년 이상)라면 바로 채권형 상품으로 눈을 돌리라고 조언한다. 단기투자자라도 위험자산인 주식비중을 일부 줄여나가는 동시에 채권형 펀드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최선의 투자전략이라고 제시한다. 채권이 투자리스크를 줄이는 분산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 최초로 기관간 레포(REPO)거래와 채권ETF 펀드 '설정'
자산운용사들끼리 환매조건부채권(RP)을 사고 파는 거래가 있다. 이를 레포(REPO) 거래라고 한다. 이 시장은 현재 한 달 평균 50조원이 넘는 돈이 거래되고 있는 거대한 채권 유통시장이다. 2007년에 업계 최초로 도입됐으니 3년 만에 급성장한 것이다. 기관간 레포 거래를 자산운용업계 최초로 도입한 주인공이 바로 김 부장이다.
"기관간 레포 거래는 간단히 말해서 채권형 펀드에서도 레버리지(leverage)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보완한 채권상품입니다. 환급성이 떨어지는 채권의 단점을 극복한 겁니다. 한 자산운용사가 레포 거래를 할 경우 보유중인 채권을 담보로 다른 자산운용사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습니다. 채권을 담보로 돈을 빌린 자산운용사는 이 돈을 다른 곳에 재투자해 수익을 내는 구조입니다"
정책금리의 대세 상승기로 일컬어지는 '채권시장의 불황기(2004~2007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그는 기관간 레포 거래를 제시했다. 불황기에서 벗어나려면 기존의 업무분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게 김 부장의 오랜 생각이다.
"기관들끼리 RP를 거래를 하는 레포 거래를 2007년 자산운용업계 최초로 우리자산운용이 도입했습니다. 이 거래를 도입해 발전시키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당시 한국은행 관계자를 비롯해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각 자산운용사 운용본부장에 이르기까지 관련 책임자들은 대부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시간이 갈수록 성장하지 못하고 반대로 줄어들고 있는 채권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게 레포 거래였다고 확신했다. 그 결과 이제는 자산운용사 대부분이 참여하는 거대한 규모의 채권시장이 됐다.
지난 7월 업계 최초로 도입된 채권ETF(상장지수펀드)도 김 부장이 우리자산운용 동료들과 함께 거둔 값진 결과물이다. 이 상품은 도입된 지 4개월 만에 설정규모가 1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관련 펀드의 설정액까지 합하면 2조원 이상이다. 이 중 우리자산운용의 설정액은 3500억원 정도로, 업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채권ETF 업계 도입을 위해서는 우리자산운용보다 KB자산운용, 삼성투신운용이 먼저 뛰었습니다. 이들이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해 관련 규정도 정비했어요. 우리자산운용은 후발주자인 셈이죠. 하지만 우리자산운용은 다른 자산운용사와 달리 채권운용본부가 직접 채권ETF 시장을 분석했고, 미래 성장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그 결과 국고채ETF를 업계 최초로 상장한 데 이어 펀드설정액 규모도 급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거래량과 수익률도 KB자산운용과 삼성투신운용에 비해 우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채권ETF는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시장을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주식처럼 거래하게 만든 것이다. 장외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한 뒤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또 채권지수는 신용등급과 평균만기를 조합해 다양하게 산출된다.
아직까지 국고채ETF만 상장되어 있지만 통안채ETF도 곧 상장될 예정이다. 업계는 채권ETF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채권시장 규모가 날로 성장하고 있어서다. 2008년말 기준으로 채권시장의 발행잔액은 864조4000억원이며, 이는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623조원과 비교할 때 규모 면에서 대등한 수준이다.
◆"기준금리 대세 상승기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
채권시장에 발을 내딘 뒤 실패를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김 부장도 업계를 떠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순간이 있었다. 기준금리의 대세 상승기로 불리던 2004년부터 2007년말까지 4년간이다. 기준금리는 이미 시중금리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던 시기라 금리가 오를때 마다 채권가격은 급락했다. 채권은 투자처로서 아무런 매력이 없던 때였다.
채권시장을 바라보던 시장참여자들의 시선도 싸늘해져만 갔다. 채권운용본부는 급기야 '골치덩어리' 부서로 전락해버렸다. 기존의 채권상품 투자자들도 주식, 파생상품펀드, 해외펀드, 부동산펀드 등 잇단 대체상품으로 갈아타고 있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기준금리가 계속 올랐어요. 반면 채권상품 수탁액은 꾸준히 줄어들었죠.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채권운용본부가 한 자산운용사가 일년 동안 번 전체 수익중 3분의 1 가량을 벌어들였는데 이 기간 동안 N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당연히 채권운용본부의 입지도 갈수록 좁아졌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업계 동료와 선·후배들이 채권시장을 떠나갔어요. 저도 이 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채권시장의 극심한 불황기에도 김 부장이 이 시장을 떠나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채권시장의 호황기가 곧 다가올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한국도 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어 가고 있어요. 게다가 경제성장도 점차 고성장의 시대에서 저성장의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골칫거리가 되고 있죠."
국가든 개인이든 퇴직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고령화·저성장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보안자산으로 채권투자가 대안"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은퇴 이후 보유자산을 안전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투자처로 채권시장 만큼 좋은 시장은 어느 곳에도 없다는 이야기다.
◆채권시장 발전을 위해 '스크린집중제' 도입 시급
국내 채권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김 부장은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장외시장에서 채권거래가 보다 투명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매수·매도 호가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스크린집중제'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100억원 단위의 현 거래규모를 10억원 단위로 낮춰 보다 많은 투자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시장이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장외시장인 채권매매가 이뤄지는 곳은 인터넷 메신저이다. 브로커리지 업무를 담당하는 각 증권회사 직원들이 각 채권의 매수호가와 매도호가를 일일이 찾아내 거래를 성사시켜 주는 방식이다. 또 중개업자가 메신저 안에서 채팅방을 개설해 이곳에서 거래가 진행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중개업자가 전화를 걸어 매수 및 매도호가를 알아내야만 했다. 이 때와 비교하면 메신저를 이용할 거래방식은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김 부장은 매매시스템이 더욱 진보돼야 한다고 말한다.
"메신저라서 한계가 있어요. 채권의 정보와 가격 등이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식거래에서 투자자가 허수거래를 넣어 주가상승 또는 주가하락을 유도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유통구조의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대부분 자산운용사들은 발행시장을 이용해 주로 채권을 사고 있다고 김 부장은 귀띔했다.
매수·매도 호가가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쪽으로 채권시장의 유통구조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채권시장 참여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사고 팔아야 가격이 제대로 형성되고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내 채권시장의 유통구조는 글로벌 기준으로 많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채권시장에서 하루 평균 거래되는 거래규모도 15조원 가까이 될 정도로 시장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매매거래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발전해나가지 못한다면 한국의 채권시장은 결국 쇠퇴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우려했다.
"100억원에 이르는 무거운 거래단위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100억원 단위로 거래되는 채권을 매수할 수 있는 수요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채권 수요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주요인입니다. 참고로 미국, 유럽, 일본, 호주, 홍콩 등 선진국들의 채권매매 단위는 모두 10억원입니다"
김 부장은 채권시장에서 브로커와 애널리스트를 거쳐 펀드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옴니버스 채권맨'이다. 시장 발전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글=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
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hankyung.com
같은 시각 서울 여의도동에 있는 KT빌딩 17층 우리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펀드매니저 등 관계자들이 오전 11시30분에 공개될 금통위의 통화정책 발표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금통위는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시까지 기준금리를 현수준(2.00%)에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채권시장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기준금리가 줄곧 하향 조정됐기 때문에 금리가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던 터였다. 한은의 정책결정기구인 금통위가 만일 기준금리를 인상했더라면 채권가격의 급락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김기현 부장(42·사진)을 비롯한 채권운용 펀드매니저들은 발표문 공개직후 단기채권(6개월, 1년, 1년 6개월 만기)을 시장에 내다팔았다. 동시에 새로운 투자 포지션을 잡았다. 금리인상을 염두해 둔 전략이다.
우리자산운용의 시장분석은 보기좋게 적중했다. 발표문이 공개된 직후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총재가 통화정책 발표문을 재해석(금리인상 가능성 시사)하는 발언을 내놨고 채권시장은 요동쳤다.
채권시장에서도 1분1초를 앞다퉈 단기수익을 노리는 순간이 있다. 바로 금통위가 열리는 날이다. 하지만 김 부장은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다. 늘 차분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채권시장을 미리 분석해 단기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이미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채권시장에서는 파도보다 조류를 봐야 합니다. 바로 눈 앞에서 움직이는 파도의 높낮이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이 파도가 밀물인지 썰물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그 어떤 긴급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시장을 압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채권시장 선도자…스카우트 제의 빗발치다!
김 부장이 채권시장에 입문한 것은 올해로 16년째다. 1995년 한화경제연구소에 입사해 채권시장 분석과 금리전망 업무를 맡으면서 채권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그는 당시 '본드 브리프'라는 시장분석 보고서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업계에서 그의 보고서가 '채권시장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였다.
3년 뒤인 1998년 김 부장은 삼성증권으로부터 첫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된다. 금융업계는 이미 외환위기(IMF)를 겪은 터라 금리 및 채권분석가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로 자리를 옮긴 김 부장은 7년 동안 채권분석팀 애널리스트로 활약하게 된다. 주로 채권조사 업무를 맡았으며, 채권운용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김 부장이 쌓은 업적은 대단했다. <한경 비즈니스> 등 경제 전문지가 선정한 '2002년 채권분석 베스트 애널리스트' 부문에서 잇따라 1, 2위를 차지했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한국은행으로부터 '한국은행 총재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채권시장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명성을 떨치던 김 부장에게 두 번째 스카우트 제의를 한 곳은 계열사인 삼성투신운용이었다.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채권운용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주위에 친한 동료들에게 채권운용을 해 보고 싶다고 간간이 말했는데 그 뒤부터 업계에서 근거 없는 루머가 돌았어요. 제가 몇몇 자산운용사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곧 이직할 것이라는 소문이었죠. 그러자 삼성투신운용에서 찾아왔어요. 다른 회사로 이직하려는 이유가 채권운용을 해보기 위해서라면 계열사인 삼성투신에서 채권운용을 맡아달라는 권유를 받게 된 것이죠. 루머로 인해 손쉽게 채권운용에 뛰어들 수 있었던 해프닝을 겪은 것이죠"
그렇게 채권운용 펀드매니저로 첫 발을 내딘 그는 2002년 1월 하나알리안츠투신운용으로부터 세 번째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데 이어 2005년 10월에 우리자산운용으로부터 네 번째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이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에서 채권운용을 책임지고 있다. 당시 우리자산운용은 펀드매니저였던 김 부장에게 채권운용 책임자(부본부장) 자리를 내걸고 접근했었다.
이처럼 잇단 스카우트 제안을 받으며 김 부장이 채권시장에서 인정받은 이유는 그의 전략가적 기질 때문이다. 그는 채권시장 불황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항상 신(新)시장을 개척해 채권시장을 통째로 이끌어 내는 선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진가는 우리자산운용에서 제대로 발휘됐다.
◆'복리의 마술' 채권상품…호황기는 기준금리 4% 회복시
김 부장은 평소 주위 사람들에게 '은퇴 후 1억 연봉자로 살고 싶다면 채권에 투자해라'라는 말을 자주 한다. 10년 또는 20년 이상 매년 최소 5% 이상의 고정수익을 올릴 수 있을뿐 아니라 복리의 마술까지 기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채권시장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비교해도 10년 또는 20년 동안 시중은행 금리를 초과하며 매년 5% 이상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상품을 찾아내기란 정말 어려워요. 가령 장기적으로 우량기업의 주식을 사서 보유한다고 해도 그 우량기업이 10년 내지 20년 동안 매년 5% 이상의 수익을 고정적으로 낼 수 있을까요."
국공채 등 채권은 국가가 사라지기 전까지 매년 5% 이상의 고정수익을 보장해 주고, 이자가 붙어 재투자하는 효과까지 누릴 수 있어 장기투자하면 그 수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설명이다. 채권상품의 특징인 복리의 마술이 투자매력을 높인다는 이야기다.
그는 특히 고령화·저성장 시대로 진입한 현 상황에서 은퇴 이후 보안자산으로서 채권형 상품의 가치는 갈수록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금부터 투자자산의 일부를 채권시장에 분산투자하는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채권시장이 호황기를 맞이하는 시기는 기준금리가 4% 수준까지 회복한 뒤부터 입니다. 한국경제의 최근 성장세와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하면 4~5%대 기준금리가 정상적인 금리수준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채권투자의 적기는 바로 이때부터 입니다"
최근 채권시장 주변의 상황도 긍정적이다. 우선 2011년부터 본격화될 퇴직연금제도가 채권상품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킬 것으로 김 부장은 기대하고 있다. 국내 채권시장의 국제화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한국의 국채시장이 세계채권지수(World Global Bond Index)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데 이 지수에 편입되면 아시아 지역통화에 대한 논의도 동시에 진행되면서 해외투자자들의 투자도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
"기준금리가 정상적인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채권시장이 호황을 맞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퇴직연금 및 세계채권지수 편입 등 채권시장 활성화를 위한 시장주변 상황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채권을 사려는 수요자가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지금이라도 장기적인 투자자(최소 10년 이상)라면 바로 채권형 상품으로 눈을 돌리라고 조언한다. 단기투자자라도 위험자산인 주식비중을 일부 줄여나가는 동시에 채권형 펀드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최선의 투자전략이라고 제시한다. 채권이 투자리스크를 줄이는 분산투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 최초로 기관간 레포(REPO)거래와 채권ETF 펀드 '설정'
자산운용사들끼리 환매조건부채권(RP)을 사고 파는 거래가 있다. 이를 레포(REPO) 거래라고 한다. 이 시장은 현재 한 달 평균 50조원이 넘는 돈이 거래되고 있는 거대한 채권 유통시장이다. 2007년에 업계 최초로 도입됐으니 3년 만에 급성장한 것이다. 기관간 레포 거래를 자산운용업계 최초로 도입한 주인공이 바로 김 부장이다.
"기관간 레포 거래는 간단히 말해서 채권형 펀드에서도 레버리지(leverage)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보완한 채권상품입니다. 환급성이 떨어지는 채권의 단점을 극복한 겁니다. 한 자산운용사가 레포 거래를 할 경우 보유중인 채권을 담보로 다른 자산운용사로부터 돈을 빌릴 수 있습니다. 채권을 담보로 돈을 빌린 자산운용사는 이 돈을 다른 곳에 재투자해 수익을 내는 구조입니다"
정책금리의 대세 상승기로 일컬어지는 '채권시장의 불황기(2004~2007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그는 기관간 레포 거래를 제시했다. 불황기에서 벗어나려면 기존의 업무분야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게 김 부장의 오랜 생각이다.
"기관들끼리 RP를 거래를 하는 레포 거래를 2007년 자산운용업계 최초로 우리자산운용이 도입했습니다. 이 거래를 도입해 발전시키기까지 정말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당시 한국은행 관계자를 비롯해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증권금융, 각 자산운용사 운용본부장에 이르기까지 관련 책임자들은 대부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시간이 갈수록 성장하지 못하고 반대로 줄어들고 있는 채권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게 레포 거래였다고 확신했다. 그 결과 이제는 자산운용사 대부분이 참여하는 거대한 규모의 채권시장이 됐다.
지난 7월 업계 최초로 도입된 채권ETF(상장지수펀드)도 김 부장이 우리자산운용 동료들과 함께 거둔 값진 결과물이다. 이 상품은 도입된 지 4개월 만에 설정규모가 1조원을 넘어서고 있다. 관련 펀드의 설정액까지 합하면 2조원 이상이다. 이 중 우리자산운용의 설정액은 3500억원 정도로, 업계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채권ETF 업계 도입을 위해서는 우리자산운용보다 KB자산운용, 삼성투신운용이 먼저 뛰었습니다. 이들이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접촉해 관련 규정도 정비했어요. 우리자산운용은 후발주자인 셈이죠. 하지만 우리자산운용은 다른 자산운용사와 달리 채권운용본부가 직접 채권ETF 시장을 분석했고, 미래 성장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그 결과 국고채ETF를 업계 최초로 상장한 데 이어 펀드설정액 규모도 급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거래량과 수익률도 KB자산운용과 삼성투신운용에 비해 우위를 보이고 있습니다"
채권ETF는 장외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시장을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주식처럼 거래하게 만든 것이다. 장외기업이 기업공개(IPO)를 한 뒤 주식시장에 상장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또 채권지수는 신용등급과 평균만기를 조합해 다양하게 산출된다.
아직까지 국고채ETF만 상장되어 있지만 통안채ETF도 곧 상장될 예정이다. 업계는 채권ETF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채권시장 규모가 날로 성장하고 있어서다. 2008년말 기준으로 채권시장의 발행잔액은 864조4000억원이며, 이는 주식시장의 시가총액 623조원과 비교할 때 규모 면에서 대등한 수준이다.
◆"기준금리 대세 상승기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
채권시장에 발을 내딘 뒤 실패를 모르고 승승장구하던 김 부장도 업계를 떠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순간이 있었다. 기준금리의 대세 상승기로 불리던 2004년부터 2007년말까지 4년간이다. 기준금리는 이미 시중금리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던 시기라 금리가 오를때 마다 채권가격은 급락했다. 채권은 투자처로서 아무런 매력이 없던 때였다.
채권시장을 바라보던 시장참여자들의 시선도 싸늘해져만 갔다. 채권운용본부는 급기야 '골치덩어리' 부서로 전락해버렸다. 기존의 채권상품 투자자들도 주식, 파생상품펀드, 해외펀드, 부동산펀드 등 잇단 대체상품으로 갈아타고 있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기준금리가 계속 올랐어요. 반면 채권상품 수탁액은 꾸준히 줄어들었죠. 2004년 이전까지만 해도 채권운용본부가 한 자산운용사가 일년 동안 번 전체 수익중 3분의 1 가량을 벌어들였는데 이 기간 동안 N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당연히 채권운용본부의 입지도 갈수록 좁아졌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업계 동료와 선·후배들이 채권시장을 떠나갔어요. 저도 이 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채권시장의 극심한 불황기에도 김 부장이 이 시장을 떠나지 않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채권시장의 호황기가 곧 다가올 것이란 예상 때문이다.
"한국도 고령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되어 가고 있어요. 게다가 경제성장도 점차 고성장의 시대에서 저성장의 시대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커다란 골칫거리가 되고 있죠."
국가든 개인이든 퇴직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고령화·저성장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보안자산으로 채권투자가 대안"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은퇴 이후 보유자산을 안전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투자처로 채권시장 만큼 좋은 시장은 어느 곳에도 없다는 이야기다.
◆채권시장 발전을 위해 '스크린집중제' 도입 시급
국내 채권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김 부장은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장외시장에서 채권거래가 보다 투명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매수·매도 호가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스크린집중제'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100억원 단위의 현 거래규모를 10억원 단위로 낮춰 보다 많은 투자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시장이 유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장외시장인 채권매매가 이뤄지는 곳은 인터넷 메신저이다. 브로커리지 업무를 담당하는 각 증권회사 직원들이 각 채권의 매수호가와 매도호가를 일일이 찾아내 거래를 성사시켜 주는 방식이다. 또 중개업자가 메신저 안에서 채팅방을 개설해 이곳에서 거래가 진행되기도 한다.
과거에는 중개업자가 전화를 걸어 매수 및 매도호가를 알아내야만 했다. 이 때와 비교하면 메신저를 이용할 거래방식은 진일보한 것이다. 하지만 김 부장은 매매시스템이 더욱 진보돼야 한다고 말한다.
"메신저라서 한계가 있어요. 채권의 정보와 가격 등이 과장되거나 왜곡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식거래에서 투자자가 허수거래를 넣어 주가상승 또는 주가하락을 유도하는 것과 비슷한 경우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유통구조의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대부분 자산운용사들은 발행시장을 이용해 주로 채권을 사고 있다고 김 부장은 귀띔했다.
매수·매도 호가가 한 곳에 모일 수 있는 쪽으로 채권시장의 유통구조를 바꿔 나가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채권시장 참여자들이 한 곳에 모여서 사고 팔아야 가격이 제대로 형성되고 거래가 투명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내 채권시장의 유통구조는 글로벌 기준으로 많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채권시장에서 하루 평균 거래되는 거래규모도 15조원 가까이 될 정도로 시장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매매거래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발전해나가지 못한다면 한국의 채권시장은 결국 쇠퇴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우려했다.
"100억원에 이르는 무거운 거래단위도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100억원 단위로 거래되는 채권을 매수할 수 있는 수요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채권 수요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주요인입니다. 참고로 미국, 유럽, 일본, 호주, 홍콩 등 선진국들의 채권매매 단위는 모두 10억원입니다"
김 부장은 채권시장에서 브로커와 애널리스트를 거쳐 펀드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옴니버스 채권맨'이다. 시장 발전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그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글=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
사진=한경닷컴 양지웅 기자 yang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