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액화석유가스(LPG) 업체에 6700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과징금을 물린 것은 LPG 가격이 서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기업들의 담합 행위가 서민 부담을 가중시킨다는청와대의 정책 의지가 작용한 것.이에 따라 기업들 사이에 카르텔에 대한 경각심이 여느 때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민 앞세운 과징금 '폭탄'…업계 "2~3년치 이익 토해내라니"
◆서민피해 집중 감시

공정위는 지난해 대통령 업무보고 때부터 서민 피해예방을 위해 서민 밀접 품목에 대한 담합 등 불공정행위를 집중 감시했다고 밝혀왔다. 특히 이번 LPG의 가격 담합 건은 지금까지 다뤄왔던 카르텔 사건 중에서도 서민 피해의 정도가 가장 심각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LPG는 프로판과 부탄으로 나뉘는데 프로판은 액화천연가스(LNG)가 보급되지 않는 취약지역의 730만 가정과 식당에 공급되고 있고,부탄은 230만대의 택시 · 장애인 승용차 등의 연료로 사용되고 있다.

기업들에 카르텔에 대한 경각심을 줄 필요도 있다는 전략적인 판단도 있었다. 실제로 한국기업이 외국 경쟁당국에서 받은 벌금액은 1조7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미국 경쟁당국에 벌금을 낸 세계 10대 회사 중 4곳이 한국 회사인 데다 심할 경우 형사제재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서민 앞세운 과징금 '폭탄'…업계 "2~3년치 이익 토해내라니"
공정위 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및 선진 경쟁당국은 담합이 최소한 10% 정도의 가격인상을 유발한다고 추산하고 있다"며 "담합은 경제 전반에 많은 폐해를 유발해 '시장경제의 암'으로 비유된다"고 설명했다.

◆담합 어떻게 이뤄졌나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을 주도한 것은 LPG 수입업체인 E1,SK가스였다. 이들은 수입과정에서 먼저 LPG 판매가격을 결정한 직후 거래관계가 있는 정유사들에 자신들의 LPG 가격을 팩스 등을 이용해 통보해 줬다. 또한 LPG 공급사들은 수시로 영업담당 임원급 · 팀장급 모임을 갖고,LPG 판매가격 담합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확인하면서 가격을 유지했다. 공정위가 확인한 이들 모임횟수만 2003년 이후 20여회에 달할 정도였다. LPG 공급사들은 충전소에 대해 낮은 가격을 통해 거래처를 확대해나가는 행위를 '거래처 침탈'이라고까지 표현하면서 이를 제지했다고 공정위는 주장했다.

◆사상 최대 과징금 산정 기준은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가격담합과 같은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매출액의 10% 범위 내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공정위는 6개사의 담합기간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로 관련 매출액은 21조원에 달한다고 판단했다. 법조항을 그대로 적용하면 최대 2조원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었던 셈이다. 실제 LPG 수입사인 E1과 SK가스는 이 기간에 연평균 마진이 ㎏당 11.09원에서 33.21원으로 3배 증가했고 순이익도 4.6배 증가했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공정위는 이번 건에 대해서는 과징금 산정 기준을 5~7%로 정했다. 여기에 담합을 자진신고한 것으로 알려진 SK에너지와 SK가스가 자진신고자 감면제도(리니언시)로 과징금을 감면받으면 LPG업계가 실제로 부담할 총 과징금은 4094억원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담합을 1순위로 자진신고하면 과징금 100%, 2순위는 50%의 감면 혜택을 주고 있다.

과징금은 당초 공정위가 생각했던 1조3000억원에 비해서는 절반으로 줄었다. 그러나 업체들에는 2~3년치 이익에 해당되는 천문학적인 규모다. LPG 업체들은 "고등법원에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수입가격에 세금과 환율 등 외부적인 요인으로 가격이 결정돼 자신들이 조정할 여지는 전체 가격의 8%에 불과하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한 항소를 통해 과징금의 규모라도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리니언시(liniency) 제도=사전적 의미로는 '관대한 처분'이라는 뜻.담합 혐의가 있는 기업 중 먼저 자백하는 기업에는 죄를 묻지 않거나 줄여주겠다는 조건으로 카르텔 내부의 고발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공정위는 1순위로 자진 신고하면 100%,2순위로 신고하면 50% 수준의 과징금을 면제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