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오즈의 닥터》(이룸 펴냄)는 '현실과 환각이 검은 얼룩이 되어 뚝뚝 녹아내리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김종수는 정신과 의사 '닥터 팽'을 정기적으로 만나 상담을 받는다. 그런데 김종수도 닥터 팽도 이상하다. 김종수가 털어놓는 가족사 는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 그의 상대역(?) 닥터 팽은 두꺼운 목과 각진 어깨에 요사스럽게 홈드레스를 걸치기도 하고,근육질 다리를 드러낸 채 세일러복을 입기도 한다. 이 기묘한 상담이 계속되면서 뒤섞여 있던 현실과 환각의 경계선이 드러나고,끔찍한 사실들이 밝혀진다.

첫 번째 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로 제10회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뒤 두 번째 장편소설로 또다시 문학상을 받는 저력을 보여준 소설가 안보윤씨(28 · 사진)는 《오즈의 닥터》를 '닥터 팽의 위조기억말살기'라고 설명했다. 안씨는 "김종수라는 인물에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했다"면서 "불안정하고,현실에서 도피하고,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게 현대인"이라고 말했다.

안씨가 그려낸 김종수는 겉으로는 멀쩡한 교사다. 하지만 그는 키워준 아버지와 낳아준 아버지가 다른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고,약물 중독에 시달리고 있으며,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끊임없이 허언을 토해낸다. 그러다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한사코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인간이기도 하다.

안씨는 "김종수가 지어내는 거짓말은 현대인의 외로움을 반영한다"고 전했다. 소설에서 김종수는 닥터 팽에게 끊임없이 아버지,누나,동생 등 가족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사실 김종수는 외아들인 데다 어머니는 일찍 죽었다.

이에 대해 안씨는 "콧구멍에 들어간 옥수수알을 빼내줄 엄마가,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었을 때 구해줄 누나가 있길 바랐기 때문에 김종수는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전했다.

김종수와 닥터 팽 외에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은 김종수의 학교 제자 수연이다. 선생님을 흠모하게 된 수연은 본능적으로 김종수의 뒤를 밟는다. 수연의 행동은 정상인의 관점에서 보기엔 귀엽기 짝이 없는 '스토킹'이지만,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김종수는 자기 세계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안씨는 "《오즈의 닥터》에는 '촌스러운' 소재들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출생의 비밀이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애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에 나온 시체 유기 방법 등은 독자들에게 매우 익숙한 소재다. 이에 대해 안씨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를 낯설게 구성해 읽고 싶은 이야기로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김종수가 지어낸 거짓은 아침안개처럼 걷혀나가고,피할 수 없이 명징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다. 그럴수록 김종수는 환각 속으로 더 깊숙이 도망친다.

동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차용한 소설의 제목은 오즈의 마법사가 실재하지 않았다는 원전이 그랬듯 김종수가 만들어낸 세계가 환각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하지만 "자네가 믿고 싶어하는 부분까지가 망상이고 나머지는 전부 현실"이라는 일갈 앞에서도 김종수는 이렇게 외치며 기어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도망칠 거예요.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살아가야 한다니,그건 너무 끔찍한 형벌이잖아요. 나한테는 이 정도가 어울려요. 죄책감도 책임감도 자부심도 없는 이 정도가. " '이 정도'만으로 살고 싶어하는 현대인은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글=이고운/사진=강은구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