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소재산업 육성 좌담회] 핵심소재 강해야 월드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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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LCD도 마냥 웃을 수 없다"
정부가 최근 20대 핵심 부품 · 소재산업을 집중 육성,2018년까지 세계 4대 소재 강국에 진입하겠다는 '부품소재경쟁력 제고 종합대책'을 내놨다. 국내 산업구조가 IT(정보기술) 등 하이테크 위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핵심 소재의 기술 자립이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서울 조선호텔에서 마련한 전문가 지상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세계 부품소재 시장 진출을 늘리기 위해서도 민 · 관 · 연 공조를 통한 기술 개발 드라이브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정부가 2018년까지 소재부문에서만 2000억달러의 수출을 올리겠다는 마스터 플랜을 내놨다. 지난해 수출이 652억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욕적인 목표다.
◆조석 실장=2000년 이후 정부가 꾸준히 부품 · 소재산업 육성정책을 편 결과,외형적으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01년 27억달러 흑자였던 이 부문 무역수지가 지난해 348억달러로 급증했다. 부품소재산업의 기술경쟁력도 미국의 87.3% 수준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하이테크 분야에서는 화학,세라믹 소재를 중심으로 대일 무역적자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범용 소재를 중심으로 빠르게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너트 크래커' 신세가 걱정된다. 앞으로 3,4년 내에 부품 · 소재산업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완제품산업에까지 심각한 악영향이 고착화될 우려가 크다.
◆송석정 원장=삼성,LG 등 글로벌 IT 제조업체들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는 있지만 소재 국산화율에선 갈 길이 멀다. 예컨대 LCD 패널에 들어가는 11개 소재 가운데 국산화율이 50%를 넘는 품목은 단 3개뿐이다. 보상필름,PVA필름,TAC필름은 전량을 일본 등 해외에서 수입한다. 백라이트용 핵심 소재 4개의 국산화율은 모두 50%를 밑돈다. LCD 등 완제품의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에 머무는 데 비해 소재의 영업이익률은 30%에 가깝다. 우리 기술로 소재를 만들어내면 완제품 제조업체들은 범용 제품의 경우 연 20%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소재산업으로 성공한 기업 중에 대표적인 곳이 일본 도레이다. 비행기용 첨단섬유시장을 눈여겨보고 1970년대부터 연구개발을 시작,보잉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첨단 섬유가 매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 수준인 데 비해 영업이익이 40%에 육박한다.
◆이재흥 단장=어떤 산업에서건 핵심 소재를 쥐고 있는 기업이 주도권을 갖게 마련이다. 소재업체가 완제품의 가격 결정권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소재산업은 선점 효과가 가장 큰 분야다. 한 번 길을 닦아 놓으면 후발 주자들이 최소 10년은 못 따라온다. 바꿔 말해 진입 장벽이 무척 높은 산업이다. 후발 기업이 어렵사리 소재 개발에 성공하더라도,선발 기업이 시장가격을 손익분기점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크게 낮춰 고사시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소재산업 자립이 힘든 이유다.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변정수 사장=자동차산업이 첨단 전자장치 시대로 접어들면서 핵심 요소 기술이 절실해졌다. 차에 전기가 워낙 많이 쓰이는 터라 고효율,고출력의 모터를 만들어야 하는데 국내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 차선 이탈 방지 등 카메라 센서와 통합한 다양한 첨단 운전 보조 장치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가 자동 주차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프랑스 부품회사인 발레오에 주문을 냈는데 채산성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만도가 맡긴 했는데 레이더,카메라 기술을 국내에서 찾기 어려워 관련 기술을 갖고 있는 독일과 일본 중소기업들을 접촉하고 있다. 가치사슬을 제대로 갖춰야 하는 게 부품 · 소재산업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사회=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시장인데 단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겠나.
◆이 단장=두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LCD용 소재와 같은 기존 산업용 소재 분야는 시장은 크지만 선발주자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아직 시장은 열리지 않았고,과연 돈이 될지 막연하기는 하지만 미래 먹을거리가 될 만한 소재 분야를 잘 가려내야 한다. 중국의 덩샤오핑 전 국가주석이 1980년대에 희토류의 무기화를 일찌감치 예언했듯이 트렌드를 정확히 읽는 게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지경부가 세계 프리미엄 소재(WPM) 10개 품목을 선정해 육성하기로 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송 원장=기존 소재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육성해야 한다. 코오롱이 2005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슈퍼섬유인 아라미드를 개발하기까지 26년의 시간이 걸렸다. 1972년 듀폰이 상업화한 이래 30여년간 듀폰과 일본 가네카 2개사가 과점해 온 시장에 어렵게 진입했다. 코오롱이 KAIST와 공동으로 아라미드 개발을 시작한 것이 1979년이었다. 짧은 기간에 선발주자들을 따라잡기란 결코 쉽지 않다. 앞으로 소재산업은 기업과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기업연합군,혹은 국가 간 경쟁이 될 것이므로 분명한 목표를 세워 정부와 기업,연구소가 긴밀한 공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조 실장=무역 역조가 심한 핵심 부품소재 20개를 정해서 3,4년 내에 따라잡고,미래 먹을거리를 책임질 월드 프리미어 소재 10개를 발굴하겠다는 것이 정부가 내놓은 마스터 플랜의 요지다.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물론 힘들 것이다. 그래서 R&D(연구 · 개발)를 수요 기업과 연계해서 할 방침이다. 삼성,LG,현대자동차 같은 수요 기업이 참여해 구매를 확약해 주면 소재 기업이 개발 이후 수요처를 확보하지 못해 겪는 어려움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회=한국이 전자 자동차 등 완제품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소재업체들에 유리한 환경이다. 이 점을 잘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조 실장=부품 · 소재를 사용하는 최종 수요 기업에 관한 한 한국은 '라인 업'이 막강하다. 반도체,LCD,평판TV에서 세계 1위이고,자동차도 세계 5위권이다. 만들기만 하면 사줄 수 있는 기업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장점이다. 중국,일본 등 인접국가들도 거대한 부품 · 소재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수요 기업과 학계,부품 · 소재 개발 기업을 연계하는 컨소시엄을 적극 유도할 계획이다.
◆이 단장=세트(완제품) 업체가 튼튼하다는 것은 큰 자산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뀔 때 한국 제조업이 도약했듯이 소재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중국의 저력이다. 독자 기술로 유인 우주선까지 쏜 나라다. 첨단산업의 부품 · 소재로부터 최종제품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경쟁력을 갖춘 나라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변 사장=최근 BMW 독일 본사에서 만도 전시회를 열었다. 처음엔 별로 관심없는 것 같더니 막상 가니까 알프스산이 내려다보이는 귀빈석에 앉으라며 수석 부사장들로부터 칙사 대접을 받았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다. 우리 제품의 품질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주거래업체인 현대 · 기아자동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을 받은 덕분이다.
◆송 원장=최종 수요업체와 소재업체 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전체적인 큰 그림을 알아야 할 때가 많은데 수요업체는 부분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정부에서 내려오는 것도 일방적일 때가 많았다. 소재기업 간 경쟁 역시 정부가 조율해야 한다. 국내에서 출혈 경쟁을 하다보면 해외 기업과 싸우기 힘들다. 아라미드를 개발할 때도 SKC와의 경쟁이 치열해 사업을 중도에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결국 SKC와 합작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사회=주요 부품 · 소재 선진국들에서 배울 점은 뭔가.
◆이 단장=미국,일본,독일의 경우 산 · 학 · 연이 함께 움직이며 정부의 프로그램이 장기 목표를 갖고 일관성 있게 진행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성과가 나올 때까지 10년 넘게 꾸준히 추진한다.
◆조 실장=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 배터리 분야에만 24억달러를 쏟아붓기로 했다. 중 ·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독일이 우리의 벤치마크 대상이 될 수 있다. 독일은 11조원을 투입해 신소재에 특화한 기술 개발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사회=부품 · 소재기업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력을 뒷받침해주는 것도 중요한데.
◆조 실장=인력과 관련해선 파격적으로 대책을 마련했다. 삼성전자의 휴대폰학과처럼 맞춤형 학과제를 만들고,소재 전문 인력에 대해선 대학 시절부터 교육비와 생활비를 전액 지원해 줄 계획이다. 또 정부 출연연구소에 파견 연구직을 신설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이 직접 인력을 뽑되,이들이 정부 출연연구소 파견 사원의 신분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급여도 70%는 정부가 부담한다. 내년 중 시범 사업으로 150억원을 투자해 200명을 뽑고,반응이 좋으면 더 확대할 생각이다.
◆변 사장=부품 · 소재산업의 고급 인력 부족현상이 심각하다. 배터리 충전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데 국내에선 숙련인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일본,스위스 등에서 은퇴한 엔지니어들을 물색하고 있다. 최근엔 IT 기초 분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에 연구소를 설립했다. 델리에 세운 연구소에서 엔지니어 80명을 뽑았는데 인건비도 훨씬 싸고 성과도 좋다. 맞춤형 학과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해봤는데 부작용이 적지 않다. 주로 전기 관련 인력을 맞춤형 학과에서 뽑았다. 그러다보니 특정 대학 출신으로 인력이 채워지는 데 따른 문제가 적지 않았다. 근본적으로 우수 인력의 지방근무 기피현상을 해결할 대책이 시급하다. 모든 연구소를 다 수도권에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송 원장=병역특례 제도의 혜택을 대기업들도 고루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우수 인력들은 대기업 중에서도 삼성,현대차,LG,SK 등 몇군데에만 쏠린다. 이들을 확보하기 위해 병역특례를 활용하고 있는데,중소기업 위주로 혜택이 돌아가다보니 우리 같은 대기업엔 기회가 많지 않다. 코오롱의 경우 6명까지 보장됐던 병역특례 할당인원이 최근 3명으로 줄었다.
정리=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좌담회 참석자
조석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변정수 ㈜만도 사장
송석정 코오롱 CTO(최고기술책임자) 겸 중앙기술원장
이재흥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소재원천기술개발사업단장
사회:이학영 부국장겸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