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가 인생을 바꾼다. 2004년부터 내리 5년째 주말마다 숲으로 달려가고 있는 표석정 대한상공회의소 회원관리1팀장(53)의 인생항로가 그랬다. 2002년 어느 여름날.네 살 난 아들 진석군의 손을 잡고 경기도 축령산을 찾았다. "아빠,이 나무 이름은 뭐야?" 처음은 쉬웠다. "응, 소나무."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아들의 질문에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늦둥이 아들에게 부끄러웠던 아버지는 그길로 산을 내려와 '숲해설가 협회'문을 두드렸다. 아들에게 당당하게 산천의 풀과 나무를 알려주겠다는 것이 시작이었다. 공부는 쉽지 않았다. 도감을 들여다봐야 했고,생태계의 순환작용,환경윤리까지 들어야 했다. 1년간 꼬박 주말을 바쳐가며 숲해설가 자격증을 따냈을 때,그는 '아, 이제 됐구나'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숲해설가 자격증을 손에 넣고 보니,숲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자격증만으로는 사람들 앞에 나설 수가 없어 매주 주말마다 선배 '숲해설가'를 쫓아다녔다. 선배들의 농익은 숲이야기를 1년간 마음속에 다져넣었다. 그리고 2004년.표 팀장은 처음으로 남산에서 숲해설에 도전했다. 마흔을 넘겨 시작한 숲해설은 너무 즐거웠다. 그래서 연월차 휴가를 내고 숲으로 달려갔다. 휴가 때엔 가족과 여행을 가는 대신 사람들에게 숲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청량한 바람과 푸근한 햇빛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렇게 5년을 달리니 숲해설을 한 횟수만도 1000번을 훌쩍 넘어갔다.

숲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는 또 다른 길로 눈을 떴다. 바로 자원봉사였다. 알코올 중독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숲해설을 시작했다. 숲의 힘은 놀라웠다. 15년간 병원치료를 받아오던 한 환자가 숲을 꼬박꼬박 찾기 시작하면서 술을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바뀐 것은 환자만이 아니었다. 표 팀장의 인생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알코올 중독자를 대상으로 시작했던 숲해설은 도박중독자, 인터넷 게임중독 청소년으로 한 발자국씩 늘어났다. "숲은 치유의 능력이 있는 놀라운 생명력의 원천"이라는 믿음이 생겨나면서 표 팀장은 아예 '은퇴 후 미래'를 숲에 걸기로 했다.

표 팀장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나의 꿈은 산림치유 안내자'라고.일본에서는 이미 2000년 들어서부터 보편화돼 있는 산림치유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 도입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뭉쳐 있는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내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했다. 인생의 전환이 이렇게 이뤄질 줄 알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표 팀장은 환한 얼굴로 웃었다. "아니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다 나와 회사도 차려봤었습니다. 사업실패 후 대한상공회의소에 들어왔지요. 주말에 우연히 시작한 숲공부가 봉사를 꿈으로 삼는 인생 2막을 열어줄 줄 정말 몰랐습니다. "

지독한 숲사랑에 부인마저도 이제는 숲해설가로 활동할 정도라는 표 팀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주말에 군포 수리산으로 찾아오시면 재미있는 숲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인사를 대신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