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03년 이후 이미 '고용 없는 성장' 국면에 진입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도한 실질임금 상승률을 억제하고 부처의 국정 운영 전반에 고용 창출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인준 한국경제학회 회장은 4일 서울 렉싱턴 호텔에서 열린 '국가고용전략 수립을 위한 토론회'에서 첫 주제발표자로 나서 "고학력화로 연간 대졸자가 50만명씩 양산되는 반면 연간 창출되는 일자리는 30만개에도 못 미치고 있다"며 "특히 장기적 소득을 보장하는 제조업 일자리가 줄고 단기적 저임금 위주의 서비스업 일자리가 증가해 질적 측면에서도 고용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최근 세계화와 기술 진보 속도를 감안할 때 고용 없는 성장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하고 노동부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한국경제신문이 후원한 이날 토론회에는 30여명의 국내 고용 · 노동 전문가들이 참여해 국가 고용전략의 중요성과 실천 과제 등을 논의했다.

두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장동구 한국은행 연구위원은 고용의 성장 유도 효과가 크지만 과도한 실질임금 상승률이 고용 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장 연구위원은 "고용과 성장의 장기적 관계를 분석한 결과 고용이 1% 늘면 장기적으로 성장률은 2%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기존 근로자의 업무시간을 늘리는 것보다 고용 확대,일자리 나누기가 생산성 증가에 더 효과적이며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임금 상승률이 적정 수준을 뛰어넘다 보니 이 같은 효과가 극대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연구위원은 "1970~2008년 경제성장률(7.2%)에서 취업자 증가율(2.4%)을 뺀 적정 임금 상승률은 4.8%지만 실제 임금 상승률은 이보다 1%포인트 높은 5.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 때문에 매년 평균 4만4000명이 고용에서 배제됐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고용정책은 성장과 고용의 동반 확대를 추구하는 방식이 되어야 하며,실질임금 상승률을 노동생산성 향상 범위 내로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고용 감소는 노사분규가 잦은 사업장에서 특히 심했던 것으로 분석됐다. 인천대 김동배 교수는 2005~2009년 노사분규 사업장과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한 결과 파업 시점까지는 총고용이 0.85% 증가했지만 파업 후에는 총고용이 6.20% 감소하는 현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시장 지배력이 큰 기업일수록 노동조합이 임금을 과도하게 인상하고 이에 따른 노무비 부담을 소비자나 주주,협력업체 등에 전가하는 현상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노사분규를 줄이기 위해서는 노동위원회의 조정 역량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이 밖에 각 부처의 국정 운영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와 이영 한양대 교수는 "그동안 일자리가 시장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경시한 채 관(官) 주도의 일자리 정책이 양산됐다"며 "이 때문에 막대한 재정자금이 투입됐지만 일자리의 창출,유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두 교수는 특히 예산 편성,세제 개편에 고용 창출에 대한 개념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기획재정부는 예산편성지침에 '고용인지 예산편성' 방식을 표준화해 포함하고,고용 유발 효과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관련 여부를 상 · 중 · 하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부처별로도 고용 성과지표를 개발해 목표 설정 및 추진 전략 등을 예산요구서에 반영토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세제 개편 때도 일자리 효과를 반영해야 한다"며 "올해 도입된 근로장려세제가 근로 의욕 고취 효과를 제대로 불러일으켰는지를 평가해야 하며 법인세와 부가가치세 개편에도 투자,고용에 대한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