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배구조 무엇이 문제인가] '경영자 독주 vs 관치금융' 힘겨루기로 끊임없는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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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관치 부활' 일부 지적에 정부 "시장 통제 받자는 뜻"
강정원 KB금융지주 회장 선임을 둘러싼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은행의 이상적인 지배구조에 대한 논의가 불붙고 있다. 관치금융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은행의 민영화가 전문 경영인의 사유화로 변질되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금융위기를 계기로 정부가 은행에 대한 직접 통제권을 강화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은행 민영화로 주주권 공백
1980년대 시중은행 민영화 정책과 함께 추진된 정부 지분의 매각작업에도 불구하고 은행장의 선임은 정부의 몫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정경유착을 고리로 한 대출압력 등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힘의 균형은 민간으로 기울었다. 정부도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한 시중은행 대부분을 민간으로 돌려줬다. 정부의 완전 민영화 정책으로 국민,신한,하나 등 주요 은행의 지분은 50% 이상 외국인으로 넘어갔고 정부는 단 한 주도 소유하지 않게 됐다.
문제는 '민영화=무주화(無主化)'로 귀결되면서 금융기관으로서의 공공성이 약화되고 소수 경영진 중심의 사유화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시 공적자금 회수와 은행 경영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추진한 민영화가 특정 대주주의 지배를 막기 위한 소유지분한도의 제한 조치와 맞물리면서 '힘의 공백'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 결과 전문 경영진의 전횡과 장기집권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의 급격한 고임금화와 스톡옵션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상은 유명무실화됐거나 경영진과 유착해 집단권력화라는 극단적인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 주주(株主)' 시절로 돌아가나
정부 일각에서는 사외이사 제도의 개편과 맞물려 현재 사외이사의 권한이 주주권보다 우선되는 폐쇄적인 금융지주사 회장 선발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분 1%도 안 되는 경영진이 형식상의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꾸려 밀실에서 인사를 결정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외부인사에게 문호를 개방할 수 있도록 회장공모제를 도입하거나 별도의 회추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KB지주처럼 사외이사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외부인사가 들어올 수 있는 통로는 보장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지분이 세밀하게 분산돼 있다는 점을 감안,주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로 주주협의회를 구성,이들이 경영진 선임에 간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한 금융지주사 부사장은 "주주권의 행사라는 명분으로 주요 금융지주사의 2~3대 주주이면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는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의 입김을 넣겠다는 속내 아니냐"고 지적했다.
◆시장에 의한 통제 시스템으로 가야
전문가들은 현재 은행의 경영 및 지배구조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영화로 인한 폐해는 시장의 통제를 통해 개선할 일이지 정부가 직접 칼을 빼드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 국책은행 임원조차도 "정부는 시장에서 검증된,능력 있는 전문경영인(CEO)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사후적으로 감시해야지 직접 플레이어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임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 CEO가 교체되는 악순환이 시중은행에 되풀이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외이사의 의사결정까지 컨트롤하겠다는 것은 누가보더라도 무리이며 이사회의 결정이 문제가 될 경우 책임을 강하게 묻는 장치로 충분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정부도 현재까지는 사외이사 제도가 원래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경영진과의 유착을 막기 위해 사외이사 후보 추천과 선출 과정,경영진 및 대주주와 관련성,독립성 등을 공시해 시장의 평가를 받도록 하는 방안이 단적이 예다. 사외이사의 결격요건을 강화하고 사외이사 총 재직기간을 5~6년으로 제한하는 한편 순환보직제를 도입하는 등의 방안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사외이사 전문성 확보를 위해 처음에는 2~3년을 임기로 하고 이후 1년 단위로 연임을 허용하고 CEO 임기가 3년인 점에 맞춰 매년 전체 사외이사의 3분의 1을 교체토록 하는 방안도 구체화되고 있다.
최 훈 금융위 은행과장은 "정부안의 핵심은 은행의 지배구조를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주주의 동의를 받으라는 것"이라며 "개별 금융회사가 가진 지배구조의 특수성도 시장의 동의만 얻는다면 정부도 문제 삼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심기/김인식 기자 sglee@hankyung.com
◆은행 민영화로 주주권 공백
1980년대 시중은행 민영화 정책과 함께 추진된 정부 지분의 매각작업에도 불구하고 은행장의 선임은 정부의 몫이었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정경유착을 고리로 한 대출압력 등 관치금융과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힘의 균형은 민간으로 기울었다. 정부도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금융지주를 제외한 시중은행 대부분을 민간으로 돌려줬다. 정부의 완전 민영화 정책으로 국민,신한,하나 등 주요 은행의 지분은 50% 이상 외국인으로 넘어갔고 정부는 단 한 주도 소유하지 않게 됐다.
문제는 '민영화=무주화(無主化)'로 귀결되면서 금융기관으로서의 공공성이 약화되고 소수 경영진 중심의 사유화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당시 공적자금 회수와 은행 경영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추진한 민영화가 특정 대주주의 지배를 막기 위한 소유지분한도의 제한 조치와 맞물리면서 '힘의 공백'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 결과 전문 경영진의 전횡과 장기집권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은행권의 급격한 고임금화와 스톡옵션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또 다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 같은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상은 유명무실화됐거나 경영진과 유착해 집단권력화라는 극단적인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 주주(株主)' 시절로 돌아가나
정부 일각에서는 사외이사 제도의 개편과 맞물려 현재 사외이사의 권한이 주주권보다 우선되는 폐쇄적인 금융지주사 회장 선발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분 1%도 안 되는 경영진이 형식상의 사외이사를 중심으로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꾸려 밀실에서 인사를 결정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외부인사에게 문호를 개방할 수 있도록 회장공모제를 도입하거나 별도의 회추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KB지주처럼 사외이사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줄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외부인사가 들어올 수 있는 통로는 보장해야 한다는 비판이다. 지분이 세밀하게 분산돼 있다는 점을 감안,주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들로 주주협의회를 구성,이들이 경영진 선임에 간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는 논리다.
한 금융지주사 부사장은 "주주권의 행사라는 명분으로 주요 금융지주사의 2~3대 주주이면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있는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의 입김을 넣겠다는 속내 아니냐"고 지적했다.
◆시장에 의한 통제 시스템으로 가야
전문가들은 현재 은행의 경영 및 지배구조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영화로 인한 폐해는 시장의 통제를 통해 개선할 일이지 정부가 직접 칼을 빼드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한 국책은행 임원조차도 "정부는 시장에서 검증된,능력 있는 전문경영인(CEO) 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를 사후적으로 감시해야지 직접 플레이어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임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 CEO가 교체되는 악순환이 시중은행에 되풀이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외이사의 의사결정까지 컨트롤하겠다는 것은 누가보더라도 무리이며 이사회의 결정이 문제가 될 경우 책임을 강하게 묻는 장치로 충분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정부도 현재까지는 사외이사 제도가 원래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경영진과의 유착을 막기 위해 사외이사 후보 추천과 선출 과정,경영진 및 대주주와 관련성,독립성 등을 공시해 시장의 평가를 받도록 하는 방안이 단적이 예다. 사외이사의 결격요건을 강화하고 사외이사 총 재직기간을 5~6년으로 제한하는 한편 순환보직제를 도입하는 등의 방안도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사외이사 전문성 확보를 위해 처음에는 2~3년을 임기로 하고 이후 1년 단위로 연임을 허용하고 CEO 임기가 3년인 점에 맞춰 매년 전체 사외이사의 3분의 1을 교체토록 하는 방안도 구체화되고 있다.
최 훈 금융위 은행과장은 "정부안의 핵심은 은행의 지배구조를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시장과 주주의 동의를 받으라는 것"이라며 "개별 금융회사가 가진 지배구조의 특수성도 시장의 동의만 얻는다면 정부도 문제 삼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심기/김인식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