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기반이 급속도로 흔들리고 있다. 민주노총은 최근 공공기업 선진화,복수노조 허용 및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공무원노조 통합 등 일련의 노동 현안을 놓고 대 정부 투쟁 기치를 올렸지만,'법과 원칙'을 앞세운 정부의 고강도 전방위 압박에 크게 위축되고 있다. 특히 철도노조가 사실상 백기투항함으로써 향후 투쟁 일정이 차질을 빚게 돼 연말 총파업 성사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노동 전문가들은 "지난 정부는 웬만한 정치파업에 관용을 베풀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불법 파업에 '무(無)관용'을 고수하고 있어 민주노총의 입지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며 "강경 투쟁 일변도의 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조직의 존립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노조에 대한 전방위 압박

노동부는 4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옛 통합공무원노조)의 노조설립신고서에 대한 신고필증 교부를 거부하고 24일까지 보완토록 요구했다. 노조에 대한 설립신고필증 교부 거부는 이례적이다. 그만큼 노동부가 이 신고서에 담긴 규약과 조합원 수,대의원 선출 절차 등의 불법성 여부를 강도 높게 조사한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옛 전국공무원노조에 가입한 해직자 82명이 여전히 조합원 신분인지 불투명한 데다 양성윤 위원장을 비롯한 파면 · 해임 조합원이 전공노에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선거 직전 산하 조직 수 및 조합원 수가 신고서 제출 당시와 큰 차이를 보이는 등 소명할 것이 많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3일 서울 양천구는 양 위원장이 7월 시국대회에 참가해 공무원법의 집단행위 금지 규정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임을 통보했다.

이 밖에도 정부는 전공노 조합원 월급에서 조합비나 후원회비가 원천 공제되는 것을 금지하고 전공노와의 단체교섭도 중지시켰다. 예상치 못한 정부의 초강수가 잇따르자 환경부와 통계청 지방청 등 공무원노조 산하 부처 노조들은 전공노와의 결별을 선택했다.

공기업의 불법 투쟁에 대해서도 정부는 '원칙'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동안 공공부문 파업의 선봉에 서 왔던 한국철도노조는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 반대와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8일째 파업을 벌였지만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파업을 철회했다. 정부는 관계 부처 합동 브리핑을 통해 철도파업에 대한 엄단 의지를 밝히고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노조를 압박했다.

국책 연구기관 중 처음으로 파업에 들어갔던 한국노동연구원도 사측이 직장폐쇄로 맞선 데 이어 국무총리실에서는 내년 예산 삭감과 조직 통폐합 가능성을 제기했다.

정부 "불법파업 뿌리 뽑겠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관용과 물밑 타협에 익숙해진 노동계로서는 단위 사업장의 파업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무관용' 대응에 당혹해하고 있다. 반면 정부는 "법질서 확립을 위해서라도 불법은 뿌리뽑겠다"는 입장이다.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에도 불구하고 손해배상 청구 및 고소 · 고발을 취하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 같은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제 여론도 더 이상 노조를 약자로 보지 않을 뿐더러 불법 파업 등 강성 노조의 투쟁이 사회 혼란을 불러와 염증을 느끼고 있다"며 "대다수 국민의 평온을 위해서라도 불법 투쟁에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악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노조는 12일부터 15일까지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조합원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탈퇴 노조는 올해만 벌써 20곳을 넘어섰다.

올해 하반기 최대 노동 현안인 복수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관련해서도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의 위상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노총과 경총,노동부가 대화를 이어가는 반면 민주노총은 노사정 대화에서 배제된 상황이다. 민주노총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등을 이슈로 연말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지만 공공부문 노조의 위축으로 투쟁 동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