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 "친절한 한국인 농담도 잘 통해…中·日보다 가까워지기 쉬운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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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G20 한국회의 협력 마틴 유든 주한 영국 대사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한국 개최가 저의 업무를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주한 외교관으로서 한국의 큰 국제행사를 돕게 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요즘 마틴 유든 주한 영국 대사는 지난해 2월 부임 이래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이 내년 11월 G20 의장국을 맡으면서 올 4월 앞서 G20 회의를 개최한 공동의장국으로서 양국 정부 간 공동작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7일부터 18일까지 덴마크에서 열리는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를 앞두고 그는 지난해부터 기후변화대책 마련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정책 자문에도 참여했다. 영국은 G20 개최 당시 기후변화 문제를 핵심 의제로 내놓은 뒤 이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 11월 한국 정부가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깜짝 발표한 데는 영국대사관이 조력자 역할을 했다.
서울 정동 영국 대사관저에서 마틴 유든 영국 대사를 만나 리스본조약 발효 이후 유럽연합(EU)의 미래와 영국의 변화,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한국의 G20 개최 등 현안에 대해 물어봤다. 인터뷰는 유든 대사가 취미로 모은 한국의 옛날 책들이 빼곡히 진열된 1층 접견실에서 커피와 수제 쿠키를 곁들인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한국이 내년 11월 G20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았습니다. 공동의장국으로서 한 · 영 간 어떤 협력이 이뤄지고 있습니까.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최근 배로니스 시리티 바데라 정책보좌관을 한국에 파견했습니다. 그는 사공일 G20 기획조정위원장을 돕고 브라운 총리의 의견을 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영국 정부는 앞서 G20을 개최한 공동의장국으로서 한국의 성공적인 G20 개최를 위해 적극 협력하고 있습니다. "
▼내년에 한 · EU FTA 발효가 예상되는데 걸림돌은 없습니까.
"한 · EU FTA가 내년에 발효되는 건 거의 확실합니다. 다만 유럽의회 통과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정확한 시점을 단언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27개국 의회 모두에서 통과 과정을 거쳐야 할지도 아직 미정입니다. 하지만 세부 조항에 대한 재협상 등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
▼FTA 발효로 영국과 한국 양국의 가장 큰 수혜 산업은 무엇입니까.
"FTA는 원칙적으로 '윈-윈'을 목표로 한 것입니다. 값싼 상품 구입과 비즈니스 활성화 등 실보다 득이 많죠.영국은 특히 금융 · 법률 · 패션 등 창의적인 산업에서 주로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스탠다드차타드 HSBC 등 영국 금융사들이 이미 한국에 많이 진출해 있지만 FTA 발효로 보험 및 증권 등 더욱 많은 업체들이 진출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 M&S(막스앤스펜서) 버버리 등 영국의 유명 패션 브랜드들이 한국 소비자들과 접점을 늘리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국은 자동차 부문에서 특히 강점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대 · 기아자동차 등 한국 자동차업체가 동유럽에 투자를 많이 한 것도 유리한 측면이 많습니다. 삼성과 LG의 연구개발(R&D) 센터도 영국에 있는 만큼 한국은 영국을 EU 진출을 위한 허브로 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UCCK) 등에선 한국 중소기업에 관심이 많은 만큼 한국 정부가 한 · EU FTA에 대한 홍보와 자문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
▼FTA 이후 한국 법률시장이 영국 로펌에 점령당할 것이란 우려가 있는데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변호사 수가 가장 적은 나라입니다. 국제변호사 수도 턱없이 적은 실정입니다. 글로벌 위상을 갖춘 영국의 대형 로펌들이 한국에 진출하면 한국 법률시장엔 위협보단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 · EU FTA는 한국 법률 시장 개방을 통해 시장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릴 것입니다. 한국 변호사협회는 한 · EU FTA 진행 과정에서 영국변호사협회와 협력을 다지는 등 시장 개방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영국 로펌들은 한국의 토종 로펌과 경쟁을 하기보다는 협력을 통한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코펜하겐 기후변화회의를 앞두고 한국은 선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엄청나게(tremendously)' 좋은 일입니다. 한국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모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영국 정부는 한국의 이 같은 노력을 매우 환영입니다. 기후변화협약 타결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는 있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회의에 참석키로 했고 중국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한 만큼 기대를 걸어봐도 될 것 같습니다. "
▼한국이 중국과 일본보다 유리한 강점은 무엇입니까? 영국 기업들이 호소하는 한국 투자의 어려움은 무엇이 있을까요.
"한국은 중국보다 투명하고 일본보다 가까워지기 쉬운 나라라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농담도 잘 통합니다. 서양인들은 일본과 중국 문화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한국은 편하고 친근하다고 말합니다. 이 같은 장점을 살리는 게 13억의 인구를 지닌 중국과 경제대국인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살아남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다만 강성노조 문제는 여전히 한국 투자를 꺼리는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 진출한 영국 금융사들은 한국 금융노조가 매우 강하다고 얘기합니다. "
▼리스본 조약 발효로 하나의 유럽이 본격화됐습니다. EU가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G2(주요 2개국)를 넘어서는 글로벌 중심축이 될 것으로 보십니까.
"EU는 이미 유엔 예산의 40%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해외 원조의 3분의 2도 EU에서 나옵니다. 기후변화협약은 물론 이란과의 핵 협상,중동문제 해결 등 국제사회의 굵직한 사안에 EU가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있습니다. 리스본 조약 발효로 EU가 보다 일치된 목소리를 내게 된다면 글로벌 무대에서 EU의 역할과 책임은 더욱 막중해질 것으로 봅니다. "
▼앞으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이 확대되면 영국이 결국 파운드화를 포기해야 할 것이란 전망이 있습니다. 파운드화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1999년 유로화 탄생 이후에도 영국은 파운드화를 주축으로 성공적인 경제운용을 해왔습니다. 영국 경제는 금융위기 전까지 유로존 경제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해 왔습니다. 영국이 당시 파운드화를 지킨 건 매우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유로화 가입국이 늘어나 유로존이 확대되더라도 영국은 파운드화를 계속해서 사용할 것입니다. "
▼EU 대통령 유력 후보로 꼽히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낙마하는 등 영국이 EU에서 소외됐다는 평가가 있는데요.
"블레어 전 총리가 EU 대통령으로 선출되지 못한 건 정치적 결정에 따른 것일 뿐 영국의 영향력이 약화됐기 때문이 아닙니다. 유럽의회의 다수석을 차지한 중도우파 성향 유럽국민당(EPP)에선 영 노동당 출신인 블레어를 달가워할 리 없었을 테고 첫 EU 대통령직은 상징성이 큰 만큼 유럽통합의 기반이 됐던 벨기에(반 롬파위 전 총리)에 우선권이 돌아간 것으로 판단됩니다. "
▼영국은 금융사 보너스 공개 등 강력한 금융개혁을 추진 중인데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건 이전의 금융규제가 효과가 없었단 의미입니다. 금융감독시스템에 뭔가 잘못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영국이 금융사의 과도한 보너스를 규제하고 투자은행과 상업은행의 분리 등을 추진하는 건 세계 금융위기 재발 방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노력으로 해석됩니다. 금융강국인 영국이 바뀌면 세계도 점차 제도를 고쳐나갈 것이고 EU 차원에서도 강력한 금융규제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이 같은 규제가 '시티오브런던'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글=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