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자회사로 둔 KB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은 23조원이 넘고 신한금융지주도 22조원에 달한다. 지분 25%를 확보하려면 KB금융은 4조8000억원,신한금융은 4조5000억원이 든다.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합치면 이보다 더 많은 돈을 집어넣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 은행에는 대주주가 없다. 거대한 조직의 인사권과 막대한 자금,부실로 인한 국민부담을 지우지 않아야 하는 책임을 짊어질 주체도 없다. 4조~5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야 얻을 수 있는 대주주의 권한과 책임이 공중에 붕 떠 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금융관료들이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관치(官治)와 정경유착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최고경영자(CEO)에게 금융권력이 넘어갔고,사외이사들이 CEO를 견제하면서 금융권력의 한 축을 맡게 됐다.

최근 강정원 국민은행장을 회장으로 내정한 KB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선임하고 회장 추천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사외이사에게 인사청탁을 하는 임원들이 생겨날 정도로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금융당국이 내년 초 도입하겠다는 '사외이사 제도 개편방안'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해 권력기구로 변질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구상이다. 막강한 권한을 갖는 CEO는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아 견제토록 했다.

금융당국은 권한 분점과 상호 견제를 통해 특정인 또는 특정세력의 독주를 막으려 하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KB금융지주 회장을 맡는 것에 대해 금융당국이 달가워하지 않은 것도 '대주주도 아니면서 너무 오래 해먹으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은행의 경영권은 분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CEO의 권한을 제한하고 사외이사들을 견제할수록 떡고물이 여러 곳에 떨어지겠지만 책임은 분산되지 않는다. 나눠 가질 수 없는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사람이 은행의 경영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 답은 금융당국이 이미 줬다. 파생상품 투자 손실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우리은행에서 징계를 당한 사람은 당시 CEO였던 황영기 전 우리금융 회장이었다. 사외이사도,금융당국도 모두 빠져나갔다. 대주주를 찾아주지 않는 한 CEO의 책임경영 이외에는 정답이 없다.

매년 2조원 정도의 이익을 내는 은행의 CEO가 장기집권하면 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이 문제는 금융감독을 철저히 하고 회계장부를 점검해 해결할 일이지 은행의 지배구조에 간섭할 이유가 못 된다. 은행의 경영실적이 좋고 금융의 정도(正道)를 걸어간다면 CEO의 장기집권을 문제삼을 권한이 금융당국에 없다. 회장이 이사회의장을 겸임하든,사외이사에게 이사회 의장을 맡기든 각 은행이 결정할 사안이다.

CEO의 장기독주를 우려하는 금융당국은 무난한 모범생들이 돌아가면서 은행을 경영했으면 하고 있다. 한 번 또는 두 번의 임기를 채우고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금융공기업의 관행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는 금융에서 삼성전자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나올 수 없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국내외 고객들을 확보하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책임지고 경영하는 CEO가 필요하다. 임기가 제한되는 순환보직형 CEO로는 금융의 미래를 제대로 일굴 수 없다.

현승윤 경제부 차장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