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 우리 경제가 5%대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겠지만 일자리는 별로 늘지 않아 '고용 없는 회복'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용 부진이 소비와 투자 침체를 불러오고 이는 회복세의 근간을 갉아먹어 경제를 다시 하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8일 정부 및 한국은행에 따르면 노동연구원과 민간 연구소 등은 한국 경제가 1%포인트 성장할 때마다 일자리를 6만개가량 창출할 수 있는 잠재능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4% 성장한다면 대략 24만명,5% 성장한다면 30만명이 새로 취업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주요 연구기관들이 낸 내년도 경제전망을 살펴보면 내년 취업자 수 증가 예상치는 이를 훨씬 밑돌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성장률로 5.5%를 제시하면서도 취업자 수는 20만명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4.6% 성장에 15만명 안팎의 고용 증가,삼성경제연구소는 4.3% 성장에 10만명 내외의 취업자 수 증가를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가 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로 우선 설비투자 침체와 산업구조의 변화를 원인으로 꼽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와 내년의 설비투자 증가율을 각각 -12%와 7.5%로 보고 있다. 2년간을 본다면 설비투자 증가율은 마이너스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기업의 설비투자가 늘지 않고 있는 마당에 임시투자세액공제제도마저 폐지될 상황이어서 설비투자 확대에 따른 고용 증대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대규모 공장을 짓더라도 외국에 짓거나 투자 역시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높이는 쪽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고용 측면에선 악재다. 실제 수치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억원의 산출을 낼 때마다 고용이 어느 정도 늘어나는지를 살펴보는 척도인 취업계수가 전체산업의 경우 2000년엔 10.9명에서 2005년 8.7명,2006년 8.4명,2007년 8.2명으로 낮아졌다. 그나마 제조업의 경우 2007년 기준으로 3명에 불과하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라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업종이 서비스업인데 경기 양극화와 더불어 규제완화가 이뤄지지 않아 고용확대를 기대하기 힘들다. 예컨대 의료부문의 경우 영리 의료법인 도입을 논의한지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내년부터 정부의 재정투입 감소에 따라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란 점이다. 지난 10월의 경우 전체 일자리는 9000개 증가했지만 이는 공공부문에서 33만2000개가 만들어진 덕이며 민간에선 32만3000개가 없어졌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정부의 재정투입이 축소되면 고용 없는 회복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정부가 때 이르게 출구전략(Exit Plan.각종 위기 극복 조치의 정상화)을 실행해선 안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세계노동기구(ILO)도 이날 '2009년 세계 노동 보고서'를 통해 각국 정부가 출구전략을 너무 성급하게 실행할 경우 2012년까지 향후 3년간 전 세계에서 약 4300만명이 실직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준동/박신영/이미아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