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국 경제는 4~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의 호황을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8개 국책 및 민간 경제연구소장들은 9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경 밀레니엄포럼 송년회에서 내년의 경제 성장세는 올해 경제가 부진했던 데 따른 '기저효과'일 가능성이 높다며 "위기 이전의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경제 정상화는 2011년에나"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내년에는 세계 경제가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서고 수출과 민간소비 · 투자가 증가해 한국 경제는 5.5%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5%대 성장을 낙관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현 원장은 "2011년 상반기는 돼야 국내외 경제가 위기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그는 "2008년에 2%대 성장을 했고 올해 0%대 성장을 한다면 내년에 5% 성장을 해도 3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2%대에 그친다"고 말했다.


김영용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온 근본 원인이 해결됐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라며 "더블딥(일시 회복후 다시 침체)이 오리라고 본다"고 우려했다. 그는 "시장 원리에 따르면 퇴출됐어야 할 부실 기업들마저 정부의 위기 대응책에 편승해 살아남았다"며 "나중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위험 요소 여전

경제연구소장들은 △선진국의 경기 회복 지연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원자재 가격 상승 등을 내년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소로 지적했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 소장은 "선진국의 경기 회복세가 아직 미약하다"며 "정부 주도의 경기 회복세가 민간 주도의 회복으로 옮겨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은 "올해 한국 경제의 빠른 회복을 가능케 했던 환율효과 등이 내년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정부 정책효과가 줄어드는 하반기에는 성장세가 약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상봉 산업연구원 원장은 "중국이 철강 조선 석유화학 등의 과잉 설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이들 품목을 저가에 밀어낼 경우 경쟁 관계에 있는 한국 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은 국내 자본시장의 주요 변수로 생명보험사 상장과 회사채 시장 확대를 꼽았다. 김 원장은 "내년 증권시장에서는 삼성생명 등 생보사들의 공모가만 10조원에 달하고 회사채 발행 규모는 100조원에 이를 것"이라며 "이 정도 규모의 물량이 원활히 소화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출구전략은 천천히

연구소장들은 민간 투자와 소비가 살아날 때까지는 기준금리 인상 등 본격적인 출구전략 시행을 늦추고 녹색성장 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성장 잠재력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정기영 소장은 "기준금리 인상은 경기회복세 물가 자산가격 등 다양한 요인들을 감안해 신중하게 해야 한다"며 "금융위기 동안 약해진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채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글로벌 불균형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수출이 감소할 수도 있다"며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내수 소비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호/박신영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