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新산업대전] (2) LG화학 10년 절치부심…편광판 시장서 日 아성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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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자소재 주도권 경쟁
지난 4월9일 대법원은 일본의 분리막 제조업체 도넨이 SK에너지를 상대로 제기한 특허 침해 소송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판결을 지켜본 SK에너지 관계자들은 환호했다. 2006년 3월 도넨이 소송을 제기한 이후 치열한 법적 공방을 거듭했던 3년간의 속앓이를 끝내는 순간이었다.
SK에너지는 2004년 12월 일본의 도넨과 아사히화성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리튬이온전지의 핵심부품인 분리막(LiBS)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느닷없는 도넨의 소송은 본격적인 양산을 앞두고 있던 SK에너지의 발목을 잡은 격이었다. SK에너지는 최종 승소 이후 본격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분리막 생산 규모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는 각오다. 부품소재산업 분야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한 · 일 경쟁 구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LG화학,일본 제치고 편광판 세계 1위
LG화학은 액정표시장치(LCD)용 편광판 시장에서 전통적인 강자였던 일본 기업들을 하나둘씩 제치고 올해 세계 1위에 올랐다. 사업 진출 10여년 만에 이룬 쾌거다. 시장조사 전문업체인 디스플레이 뱅크에 따르면 지난 2분기 LG화학의 세계 LCD용 편광판 시장점유율은 29%를 기록,일본 니토덴코(27%)를 제치고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2006년 일본 스미토모화학을 끌어내리고 2위 자리를 꿰찬 뒤 3년 만에 니토덴코의 목덜미마저 잡아챈 것.
LG화학이 2차전지와 함께 편광판을 차세대 성장동력의 한축으로 삼아 대규모 투자와 연구 개발에 나선 때는 1997년.당시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던 LCD 시장과 맞물려 편광판 수요도 급증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편광판은 두께가 머리카락 2~3개 정도 굵기인 0.3㎜의 초박막 필름으로 일정한 방향의 빛만 통과시켜 화상을 구현하는 LCD 핵심 소재다. 사업 초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LG화학은 일본 업체에 기술 이전을 요청했지만,보기좋게 거절당했다. 급성장하는 편광판 시장을 한국 기업과 나누고 싶지 않다는 게 일본 기업들의 속내였다.
LG화학은 2000년 상반기 독자기술로 개발한 편광판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이번엔 일본 업체들의 노골적인 견제가 발목을 잡았다. 일본 기업들은 제품 판매가를 20% 가까이 낮추는 공세를 폈다. LG화학은 생산공정 개선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편광판 품질을 좌우하는 이물질 통제기술과 연신기술(편광판 필름을 잡아당겨 늘리는 기술)을 잇따라 확보하면서 수익성을 맞춰나갔다. 회사 관계자는 "품질 향상과 고객맞춤형 생산 전략을 통해 세계 전자회사들에 납품 길을 뚫었다"며 "자체 기술개발을 통해 10년이나 앞서 있던 일본 기업들을 제친 것 자체가 국가적인 쾌거"라고 자평했다.
SK에너지 효성 등은 후지필름 코니카미놀타 등 일본 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편광판용 트리 아세테이트 셀룰로스(TAC) 필름 시장에도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TAC 필름은 편광판을 보호해 주는 필름이다. 효성은 이르면 연말부터 상업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2차전지 경쟁,핵심 소재 분야로 확전
한 · 일 간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2차전지 시장은 분리막을 비롯한 양극재,음극재,전해질 등 4대 핵심소재 분야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일본 소재업체들의 견제는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국내 업체들이 2차전지 산업에 뛰어들 무렵,일본 소재업체들은 한국 측에 질이 낮은 제품을 공급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기술 이전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시장 공략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SK에너지에 소송을 제기했던 도넨은 3억달러를 들여 경북 구미에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4대 핵심 소재 분야는 아직까지 첨단 제조공정 노하우와 풍부한 제조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아성이 견고하다.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분리막 외에도 니치아,히타치화학,니폰카본,미쓰비시 등이 각각 양극재,음극재,전해액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힘들여 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것은 시장이 커지고 있어서다. SK에너지는 공장 증설이 완료되는 내년 상반기 분리막 생산규모가 세계 1위인 아사히화성과 맞먹는 1억㎡까지 늘어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업체 등으로부터 2차전지 소재 전량을 수입했던 LG화학도 2~3년 전부터 양극재,전해질 일부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분리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SRS 분리막' 개발에도 성공했다. 분리막에 특수코팅을 해 안정성을 더 높인 이 제품은 LG화학이 특허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경쟁력은 GM 등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따내는 밑거름이 됐다. LG화학은 2차전지 시장에서 산요(19.6%) 삼성SDI(18.6%)에 이어 3위(13.4%)지만,소형 배터리를 제외한 전기차용 중 · 대형 배터리 분야에서는 글로벌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한화석유화학도 최근 양극재 개발에 성공했다. 2011년 1월부터 양산이 가능한 이 제품은 리튬인산철(LFP) 성분의 양극재로 기존 양극재 소재인 리튬코발트산화물(LCO)에 비해 가격이 최대 50% 정도 저렴하고 안정성이 높아 주목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2차 전지 핵심 소재의 50~60% 정도는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5년 이내에 국산화율이 70~80%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기업 인수해 기술력 확보해야
부품 · 소재 시장은 그야말로 정글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부품 · 소재분야에서 '무주공산'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선발주자들의 견제가 심하기 때문이다. 후발주자가 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덤핑공세로 돌아서 시장 진입을 막는 일이 다반사다. 자동차 제조공정의 용접,핸들링 작업에 사용하는 '수직다관절형 산업형 로봇'의 경우 2000년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 등이 국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나치,가와사키 등 일본업체들의 덤핑공세로 국산 로봇의 시장점유율이 2004년 이후 30%대로 추락했다. 특허소송도 후발주자를 견제하기 위해 즐겨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기술 개발과 병행해 아예 일본 기업을 인수,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은 세대 간 문화 차이로 후계자를 구하지 못하는 기업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국내에 투자하는 일본 기업에 대한 전략적인 지분투자나 일본 현지 기업 인수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선/이정호 기자 sunee@hankyung.com
SK에너지는 2004년 12월 일본의 도넨과 아사히화성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리튬이온전지의 핵심부품인 분리막(LiBS)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느닷없는 도넨의 소송은 본격적인 양산을 앞두고 있던 SK에너지의 발목을 잡은 격이었다. SK에너지는 최종 승소 이후 본격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분리막 생산 규모 세계 1위로 올라서겠다는 각오다. 부품소재산업 분야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한 · 일 경쟁 구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LG화학,일본 제치고 편광판 세계 1위
LG화학은 액정표시장치(LCD)용 편광판 시장에서 전통적인 강자였던 일본 기업들을 하나둘씩 제치고 올해 세계 1위에 올랐다. 사업 진출 10여년 만에 이룬 쾌거다. 시장조사 전문업체인 디스플레이 뱅크에 따르면 지난 2분기 LG화학의 세계 LCD용 편광판 시장점유율은 29%를 기록,일본 니토덴코(27%)를 제치고 정상의 자리를 차지했다. 2006년 일본 스미토모화학을 끌어내리고 2위 자리를 꿰찬 뒤 3년 만에 니토덴코의 목덜미마저 잡아챈 것.
LG화학이 2차전지와 함께 편광판을 차세대 성장동력의 한축으로 삼아 대규모 투자와 연구 개발에 나선 때는 1997년.당시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던 LCD 시장과 맞물려 편광판 수요도 급증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편광판은 두께가 머리카락 2~3개 정도 굵기인 0.3㎜의 초박막 필름으로 일정한 방향의 빛만 통과시켜 화상을 구현하는 LCD 핵심 소재다. 사업 초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LG화학은 일본 업체에 기술 이전을 요청했지만,보기좋게 거절당했다. 급성장하는 편광판 시장을 한국 기업과 나누고 싶지 않다는 게 일본 기업들의 속내였다.
LG화학은 2000년 상반기 독자기술로 개발한 편광판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이번엔 일본 업체들의 노골적인 견제가 발목을 잡았다. 일본 기업들은 제품 판매가를 20% 가까이 낮추는 공세를 폈다. LG화학은 생산공정 개선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편광판 품질을 좌우하는 이물질 통제기술과 연신기술(편광판 필름을 잡아당겨 늘리는 기술)을 잇따라 확보하면서 수익성을 맞춰나갔다. 회사 관계자는 "품질 향상과 고객맞춤형 생산 전략을 통해 세계 전자회사들에 납품 길을 뚫었다"며 "자체 기술개발을 통해 10년이나 앞서 있던 일본 기업들을 제친 것 자체가 국가적인 쾌거"라고 자평했다.
SK에너지 효성 등은 후지필름 코니카미놀타 등 일본 기업들이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편광판용 트리 아세테이트 셀룰로스(TAC) 필름 시장에도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TAC 필름은 편광판을 보호해 주는 필름이다. 효성은 이르면 연말부터 상업생산에 나설 예정이다.
◆2차전지 경쟁,핵심 소재 분야로 확전
한 · 일 간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2차전지 시장은 분리막을 비롯한 양극재,음극재,전해질 등 4대 핵심소재 분야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일본 소재업체들의 견제는 이미 10년 전부터 시작됐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국내 업체들이 2차전지 산업에 뛰어들 무렵,일본 소재업체들은 한국 측에 질이 낮은 제품을 공급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기술 이전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시장 공략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SK에너지에 소송을 제기했던 도넨은 3억달러를 들여 경북 구미에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4대 핵심 소재 분야는 아직까지 첨단 제조공정 노하우와 풍부한 제조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의 아성이 견고하다.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분리막 외에도 니치아,히타치화학,니폰카본,미쓰비시 등이 각각 양극재,음극재,전해액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힘들여 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려는 것은 시장이 커지고 있어서다. SK에너지는 공장 증설이 완료되는 내년 상반기 분리막 생산규모가 세계 1위인 아사히화성과 맞먹는 1억㎡까지 늘어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일본업체 등으로부터 2차전지 소재 전량을 수입했던 LG화학도 2~3년 전부터 양극재,전해질 일부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 분리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SRS 분리막' 개발에도 성공했다. 분리막에 특수코팅을 해 안정성을 더 높인 이 제품은 LG화학이 특허를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경쟁력은 GM 등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에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따내는 밑거름이 됐다. LG화학은 2차전지 시장에서 산요(19.6%) 삼성SDI(18.6%)에 이어 3위(13.4%)지만,소형 배터리를 제외한 전기차용 중 · 대형 배터리 분야에서는 글로벌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한화석유화학도 최근 양극재 개발에 성공했다. 2011년 1월부터 양산이 가능한 이 제품은 리튬인산철(LFP) 성분의 양극재로 기존 양극재 소재인 리튬코발트산화물(LCO)에 비해 가격이 최대 50% 정도 저렴하고 안정성이 높아 주목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2차 전지 핵심 소재의 50~60% 정도는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지만 5년 이내에 국산화율이 70~80%에 육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기업 인수해 기술력 확보해야
부품 · 소재 시장은 그야말로 정글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부품 · 소재분야에서 '무주공산'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선발주자들의 견제가 심하기 때문이다. 후발주자가 제품 개발에 성공하면 덤핑공세로 돌아서 시장 진입을 막는 일이 다반사다. 자동차 제조공정의 용접,핸들링 작업에 사용하는 '수직다관절형 산업형 로봇'의 경우 2000년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 등이 국내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나치,가와사키 등 일본업체들의 덤핑공세로 국산 로봇의 시장점유율이 2004년 이후 30%대로 추락했다. 특허소송도 후발주자를 견제하기 위해 즐겨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기술 개발과 병행해 아예 일본 기업을 인수,공격적인 전략을 구사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본은 세대 간 문화 차이로 후계자를 구하지 못하는 기업이 증가하는 추세"라며 "국내에 투자하는 일본 기업에 대한 전략적인 지분투자나 일본 현지 기업 인수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선/이정호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