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뉴스] "기자는 돈버는 직업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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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부터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쓰지 못했던 게 있습니다.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으로 떠난 모 신문사 기자에 관한 제 생각입니다. 기자가 홍보맨으로 전직한 사례는 워낙 많아서 얘기꺼리가 안됩니다. 그런데 이분(편의상 C씨라고 하겠습니다)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저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C씨를 잘 모릅니다. 인연이라면 10년전 해외출장을 함께 다녀온 게 전부입니다. 저와 C씨를 포함해 기자 약 10명이 에이서 초청으로 대만과 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대만에서는 본사와 생산라인을 둘러봤고 싱가포르에서는 에이전트 행사를 참관했습니다. 에이서는 당시 세계 7위 PC 메이커였죠.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이 문제였습니다. 센토사섬에 가서 노는 일정이었는데, 기자들도 에이전트 관계자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참가해야 하는 게 문제였습니다. C씨와 저는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우리가 에이서 직원이냐? 취재해 달라고 초청한 게 아니었냐?”고 따졌습니다.
기자들 생각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에이서 관계자는 “일사분란하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C씨와 저만 제외하고 다들 유니폼을 입고 센토사섬으로 떠났습니다. 동료 기자들한테 서운한 마음은 있었지만 미련은 없었습니다. 에이서 측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참았습니다.
호텔에 남은 C씨와 저는 하루 종일 잠만 자기는 그렇고 시내관광이라도 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인근에 근사한 공원이 있다고 해서 거길 가보기로 했습니다. 오전이라 그런지 공원은 한가했습니다. 우리 둘은 공원에서 마냥 걸었습니다. 신혼여행 온 신혼부부처럼 사진을 찍어주며 시름을 달랬습니다.
저녁에 센토사섬에 다녀온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다들 재미 있었는지 신나게 무용담을 늘어놓더군요. C씨랑 저는 듣기만 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취재 명목이라 해도 에이서 초청으로 해외출장 온 내 잘못이다, 누굴 탓하겠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C씨에 대해 형제애 같은 걸 느꼈습니다.
그 후 C씨를 만난 적은 없습니다. 신문에서 C씨의 기사를 읽으면서 빙긋이 웃곤 했을 뿐입니다. 물론 제3자를 통해 C씨에 관한 얘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선비 같은 기자”란 말을 들을 땐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C씨야말로 기자다, 계속 기자의 길을 가야할 사람이다.
그런데 몇일 전 C씨가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으로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얘길 듣는 순간 철렁 했습니다. C씨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 아닙니다. 갈수록 악화되는 신문업계 환경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미디어가 제대로 서려면 C씨 같은 기자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20여년 전 제가 기자가 된다고 했을 때 선친께서는 극구 말리셨습니다. 사이비 기자들 횡포를 들먹이면서. 그때 저는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버지, 기자는 돈 버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그 말을 듣고 “니 알아서 해라.” 허락해 주셨습니다. 친구들이 돈 좀 빌려달라고 할 때도 저는 같은 말을 하곤 했습니다.
기자생활 하면서 후회 안한 건 아닙니다. 친구들이 승용차 뒷좌석에 앉고 억대 연봉 받는다는 얘길 들을 때면 처자식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직 자존심 하나로 버텼는데 요즘엔 “기자X”이라고들 합니다. 언론이 신뢰를 회복해 C씨 같은 기자들이 신바람나게 기사 쓰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 김광현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저는 C씨를 잘 모릅니다. 인연이라면 10년전 해외출장을 함께 다녀온 게 전부입니다. 저와 C씨를 포함해 기자 약 10명이 에이서 초청으로 대만과 싱가포르에 다녀왔습니다. 대만에서는 본사와 생산라인을 둘러봤고 싱가포르에서는 에이전트 행사를 참관했습니다. 에이서는 당시 세계 7위 PC 메이커였죠.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이 문제였습니다. 센토사섬에 가서 노는 일정이었는데, 기자들도 에이전트 관계자들과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참가해야 하는 게 문제였습니다. C씨와 저는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우리가 에이서 직원이냐? 취재해 달라고 초청한 게 아니었냐?”고 따졌습니다.
기자들 생각은 대부분 비슷했습니다. 에이서 관계자는 “일사분란하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결국 C씨와 저만 제외하고 다들 유니폼을 입고 센토사섬으로 떠났습니다. 동료 기자들한테 서운한 마음은 있었지만 미련은 없었습니다. 에이서 측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참았습니다.
호텔에 남은 C씨와 저는 하루 종일 잠만 자기는 그렇고 시내관광이라도 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인근에 근사한 공원이 있다고 해서 거길 가보기로 했습니다. 오전이라 그런지 공원은 한가했습니다. 우리 둘은 공원에서 마냥 걸었습니다. 신혼여행 온 신혼부부처럼 사진을 찍어주며 시름을 달랬습니다.
저녁에 센토사섬에 다녀온 기자들과 만났습니다. 다들 재미 있었는지 신나게 무용담을 늘어놓더군요. C씨랑 저는 듣기만 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취재 명목이라 해도 에이서 초청으로 해외출장 온 내 잘못이다, 누굴 탓하겠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C씨에 대해 형제애 같은 걸 느꼈습니다.
그 후 C씨를 만난 적은 없습니다. 신문에서 C씨의 기사를 읽으면서 빙긋이 웃곤 했을 뿐입니다. 물론 제3자를 통해 C씨에 관한 얘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선비 같은 기자”란 말을 들을 땐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C씨야말로 기자다, 계속 기자의 길을 가야할 사람이다.
그런데 몇일 전 C씨가 대기업 홍보담당 임원으로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얘길 듣는 순간 철렁 했습니다. C씨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 아닙니다. 갈수록 악화되는 신문업계 환경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미디어가 제대로 서려면 C씨 같은 기자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습니다.
20여년 전 제가 기자가 된다고 했을 때 선친께서는 극구 말리셨습니다. 사이비 기자들 횡포를 들먹이면서. 그때 저는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버지, 기자는 돈 버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그 말을 듣고 “니 알아서 해라.” 허락해 주셨습니다. 친구들이 돈 좀 빌려달라고 할 때도 저는 같은 말을 하곤 했습니다.
기자생활 하면서 후회 안한 건 아닙니다. 친구들이 승용차 뒷좌석에 앉고 억대 연봉 받는다는 얘길 들을 때면 처자식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직 자존심 하나로 버텼는데 요즘엔 “기자X”이라고들 합니다. 언론이 신뢰를 회복해 C씨 같은 기자들이 신바람나게 기사 쓰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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