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원짜리 시장을 잡아라."(제약업계) vs "리베이트를 감시하라."(정부)

소화제 하나가 제약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중외제약이 1998년 일본 제약회사 호쿠리쿠(현 애보트 재팬)에서 도입한 가나톤(사진)이 그 주인공.위장관 운동을 촉진시켜 소화를 돕는 이 제품은 소화제로는 드물게 연간 판매실적이 300억원이 넘어 업계에선 '세미 블록버스터'로 꼽힌다. 효과가 좋고 다른 약과 같이 먹어도 탈이 잘 나지 않는 등 부작용이 적기 때문이다.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20년간 유지돼온 가나톤 특허보호기간이 내년 1월 말 끝난다는 점.가나톤은 올해와 내년도를 통틀어 시장 규모가 가장 큰 특허만료 오리지널 의약품이다. 이 때문에 동아제약 유한양행 종근당 등 40여개 국내 제약업체들은 4~5년 전부터 미리 제네릭(카피) 제품을 만들어놓고 특허만료 시기가 오기만을 기다려 왔다. 물론 새로 형성되는 최소 500억원 이상의 큰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제네릭이 나온 뒤 해당 시장은 치열한 판매경쟁으로 작게는 70~80%,많게는 두세 배로 커진다. 신약개발 능력이 취약한 국내 제약사들로선 기존 영업망만 활용해도 수십억원대의 매출을 추가로 올릴 수 있어 알짜 오리지널 의약품의 제네릭 제품 판매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국내 100여개 제약사들은 2006년 사노피아벤티스의 플라빅스(혈전용해제)와 2008년 화이자의 리피토(고지혈치료제) 등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특허만료 이후 제네릭을 앞다퉈 내놔 짭짤한 이익을 냈다. 유한양행의 경우 지난해 리피토 복제약 하나만으로 200억원의 매출을 추가로 올렸다.

그러나 새 시장에 관심이 꽂힌 업계와 달리 보건복지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측 관심은 딴 곳에 가 있다. 이 약은 지난 8월 '리베이트 연동 약가인하제'가 도입된 이후 특허가 끝나는 첫 번째 의약품.정부의 강력한 리베이트 근절 의지를 보여줄 장이 펼쳐지는 셈이다. 가나톤 제네릭 판매 추이와 영업 행태를 밀착 추적하면 4개월여 동안 잠잠했던 리베이트영업이 실제 사라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복지부는 아예 의약품유통센터에 집계되는 판매데이터에서 '의심거래'를 추출할 수 있는 특수프로그램까지 짜놓고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병의원에서 특정 제품 처방이 갑자기 늘었거나,처방품목이 돌연 바뀌는 경우 등이 대표적인 점검 대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건강보험약가까지 받아두고 시장 진입을 노려온 제약사들의 고민도 커졌다. '효과는 같은데 값이 10~30%가량 싸다'는 점을 강조하는 영업 방식만으로는 오리지널 의약품을 선호하는 의사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리베이트 영업 카드를 꺼내자니 이전과는 사뭇 다른 당국의 칼날이 버티고 있다. 까딱하다 적발되면 보험 약가를 20%나 깎이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한 전직 제약회사 임원은 "남(외국제약사)들이 만든 약을 베끼거나 수입해 파는 데 의존했던 제약업계가 한번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나톤이 결국 국내 제약업계가 과거로 회귀할 것인지 진화할 것인지를 가늠해볼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