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일본의 월간지 '문예춘추'가 정치인을 상대로 설문지를 돌리고,그 내용을 분석해 이른바 고향지수(故鄕指數)란 부정적 관점의 점수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중 다나카 가쿠이에 총리가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다. 이를 두고 문예춘추는 "정치지망생들이여 실망하지 말라.고향지수가 높아도 총리가 될 수 있다"라고 비아냥거리며 지역정서에 매몰된 일본정치를 개탄한 적이 있다.

필자는 오사카를 방문할 때마다 일본 지역정서의 심각성을 새삼 확인한다. 히데요시의 거성이었던 오사카성 주위에 3개의 건물이 서 있다. 하나는 오사카경찰청이고,다른 두 개는 NHK오사카 본사,그리고 이 건물과 연결된 오사카역사박물관이다.

경찰청은 현대식 건물임에도 작은 유리창만 있어 흡사 철옹성을 연상케 한다. 도쿄를 중심으로 한 관동의 맹주 이에야스에게 정벌당했던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인의 방어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타원형 원통구조의 역사박물관 맨 위층은 유리창이 크고 아래로 갈수록 창이 작은 역삼각형 모양의 벽을 가지고 있는데 맨 위층부터 상고,고대,중세방식의 연대기로 진열돼 있다. 오사카의 영광스러운 상고사는 더 많은 빛이 들어오게 하고,자랑하고 싶지 않은 근대 현대는 감추는 구조로 돼있다. 이 박물관과 초대형 지구본으로 연결된 NHK오사카 본사는 완전한 유리벽구조의 건물로,세계지향의 개방성을 상징하고 있다.

이 세 건물에서 오사카의 본심이 드러난다. 과장된 역사(역사박물관)와 압도적 홍보(NHK)로 세계를 장악(지구본)할 수 있다는 오만과 그러나 먼저 지켜야 한다는 방어인식(경찰청)이 바로 오사카 시민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생각된다. 이같이 일본은 지방도시의 건물에까지 드러날 정도로 골 깊은 지역정서가 있지만 이것이 국가적 목표에 반영돼 지역 간 대립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반면에 우리는 지방도시 어디를 가나 지역 색깔이 없어지고 있어 아쉽고,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의 골이 일본보다 엷다 싶어 다행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국가적 이슈까지 지역감정에 기초해 분열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종시 문제가 또 다른 지역 간 대립구조를 만들고 있다. 지역 간 균형발전도 국가경쟁력 제고가 근원적 목표라고 볼 때 세종시 문제는 경쟁력 차원에서 판단되고 조성돼야 한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일본이 도쿄의 천도를 추진하다 포기했다고 해서,도쿄에 대한 각종 제한규정을 풀었다고 해서 우리보다 감정의 골이 깊디깊은 각 지역들이 들고 일어섰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문제는 정치이며 정치인들의 진정한 애국심이고 이에 기초한 용기있는 실천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종시와 가장 밀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한 정당에서 당론과는 다른 주장을 펼친 한 국회의원이 국민들에게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김병일 < 여수세계박람회 사무총장 > kimparis2000@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