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가족, 그들이 他人처럼 사는 까닭은…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 탄식의 마침표라면 '(나는) 너를 모른다'는 말은 변화의 쉼표예요. '너는 모른다'고 중얼거리면서 골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당신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나와 같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상대를 향해 닫힌 문을 여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

소설가 정이현씨(37)의 두 번째 장편소설 《너는 모른다》(문학동네)는 '너는 모른다'며 등돌리고 있던 사람들이 '너를 모른다'고 속삭이며 마주보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소설은 5월의 마지막 일요일 신원불명의 시체 한 구가 한강에 떠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건의 단서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중산층 가정에 숨어 있다. 능력 있는 남편과 우아한 아내,장성한 남매와 바이올린 신동인 늦둥이 딸 유지로 구성된 이 가족에게는 대한민국 평균치 이상의 안온함이 서린 듯하다. 하지만 가족이 모두 자리를 비운 사이 유지가 실종되면서 그동안 구성원들이 꽁꽁 싸매두었던 상처가 쩍쩍 벌어진다.

정씨는 "《너는 모른다》는 홈(home)이 아닌 하우스(house)에 모여 개별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아버지 김상호는 수상쩍고 비도덕적인 사업으로 자수성가했으면서도 '자신이 아니라,가족을 위해서였다'고 항변한다. 김상호의 후처인 어머니 진옥영은 화교라는 이유로 한국사회에서 소외당해왔으며 결혼 후에도 옛 사랑에 얽매여 있다. 김상호와 전처 사이 소생인 은성과 혜성 남매는 사람들과 잘 사귀지 못한다. 막내딸 유지는 부모의 맹목적인 사랑과 기대에 맞춰가다 보니 어느새 감정 없는 '애어른'이 돼 있다.

정씨는 "상호는 강한 척하지만 기댈 곳 없고 부서지기 쉬운 불쌍한 가장,은성과 혜성은 부모의 이혼으로 어린 시절 상처받은 자녀,유지는 부모의 일방적인 애정을 받다 갑자기 가족에서 떨어져 나가는 아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가족이라는 따듯한 이름을 붙여줄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유지의 실종이라는 난제를 함께 해결하면서 이들은 드디어 조금씩 가까워진다. "문득 내가 이들을 영원토록 알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곳을 향해 나는 가만히 한 발을 내딛는다"는 혜성의 독백은 이 변화를 잘 드러낸다. 정씨는 "작은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연하고 흐릿하더라도 예전과는 달리 이들 사이를 잇는 끈이 생겼다"고 전했다.

여자들의 은밀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낸 첫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주목받은 정씨는 첫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로 '한국형 칙릿'을 제시하며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두 번째 단편집 《오늘의 거짓말》로 문학적 역량을 다시 한번 증명한 뒤 2년 만에 추리소설적 요소를 도입한 이번 소설을 발표했다. 등단 7년 동안 다양한 시도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은 정씨는 "독자들이 기대감으로 두근두근해 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면서 "그러기 위해서 전작을 자기복제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