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에 축복에 가까운 계기를 제공했다. 우선 전쟁특수로 인해 대공황이 완전히 극복돼 한때 25%에 달하던 실업률이 1942년 0%의 완전고용상태로 복귀했다.

유럽의 생산설비가 폭격으로 부서지는 바람에 전 세계적 공급과잉상태도 해소됐고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입증했다. 게다가 군수물자의 유럽 수출에 대해 금으로 결제가 이뤄진 덕분에 미국의 금보유고는 전 세계 금 스톡의 70%를 웃도는 수준이 됐다. 미국은 이를 계기로 1944년 달러의 금태환을 보장하는 브레턴우즈 체제를 출범시킴으로써 달러를 전 세계 기축통화로 격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960년대 미국은 월남전으로 인한 막대한 전비 지출과 '위대한 사회' 등의 복지 프로그램으로 인해 발생한 인플레로 금보유고의 6배 가깝게 달러를 발행했고 결국 이 때문에 엄청난 '달러 팔자'의 행렬이 지속되자 달러의 금태환보장을 철회했다. 결국 금태환이 보장되지 않는 순수한 종이화폐(paper money)가 전 세계 기축통화로 사용되는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은 GDP의 6%를 넘는 위험한 수준의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했지만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현재 미국의 금보유고는 2억6000만온스 정도로 현재 시세로 환산하면 3000억 달러 정도이며 한 해 경상수지 적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만일 금본위제가 시행됐거나 달러의 금태환이 유지됐더라면 미국의 금보유고는 일찌감치 바닥났을 것이다. 2차대전 때 금을 가득 실은 배들이 대서양을 오가며 미국에 금이 쌓인 것처럼 최근에는 달러를 실은 배들이 태평양을 오가며 다른 국가에 달러가 쌓인 셈이고 특히 중국에만 2조가 넘는 달러가 쌓였다.

결국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미국의 헤게모니는 그만큼 약화됐다. '금본위제' 하에서 금의 유입이 힘의 축적과 연결됐다면 '달러 본위제' 하에서 엄청난 달러의 유출은 힘의 상당 부분을 다른 국가로 이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중국은 이러한 흐름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면서 미국과의 양자회담인 '미 · 중 전략경제대화'가 개최될 정도로 국제적 지위가 격상됐다.

또한 G7 위주의 선진국중심 체제가 이제는 G20 중심의 다극화시대로 진입하는 모습 속에서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가 도래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2009년 한 해 위기를 잘 극복한 한국경제에 2010년은 새로운 기회가 도래할 것이다. 새해에는 우선적으로 위안화와 원화의 절상 국면을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경쟁력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와 동시에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의 변화 국면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시아 국가를 포함한 다양한 국가와의 교류를 강화하되 G20 회담을 계기로 정부 부서를 포함,각급 기관과 단체들이 해당 분야의 아시아 파트너들을 국내로 초청하거나 다자 간 회담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각자의 분야에서 다양한 거버넌스 체제 구축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비록 대국은 아니지만 중간 규모의 강국,즉 강중국(强中國)으로서의 위상 제고를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한다면 그 열매는 매우 달 것이다. 또한 이와 함께 원화의 국제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원화가 아시아 역내의 국지적 기축통화 수준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새해에는 글로벌 거버넌스 체제의 변화 국면과 함께 경제,사회,문화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주도의 새로운 아시아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우리의 국격을 높이고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이 제고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윤 창 현 <서울시립대 교수·경영학>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