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 날지 않았으니 한 번 날면 하늘에 치솟고,(3년 동안) 지저귀지 않았으니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했다. '

즉위하고 3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향락에만 젖어 살다가 때가 무르익자 춘추시대의 패주가 된 초나라 장왕을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또 시운을 타고나지 못한 항우의 운명을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것 같은데,때가 도와주지 않으니 추마조차 달리지 않네'라고 읊었다.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 따로 있더냐'(진섭세가),'대장부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여인은 자기를 예뻐해 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자객열전)도 《사기》에 있는 명언이다. 그래서 중국의 근대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루신(魯迅)은 《사기》를 '사가의 절창이요 가락 없는 이소(史家之絶唱,無韻之離騷)'라고 극찬했다. 산문으로 쓴 역사책이 전국시대 초나라 굴원의 장편 서사시 '이소'에 비견할 만큼 역사학의 거작인 동시에 문학적 명저라는 얘기다.

그러나 역사에 웬만큼 관심을 가진 사람도 이 책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중국 역사의 여명기였던 황제 헌원씨로부터 한나라 무제까지 무려 3000년의 통사를 다룬 터라 양이 방대하고 내용이 복잡한 탓이다. 그렇다고 '한 권으로 읽는~' 류의 책으로는 《사기》에 담긴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담기 어렵다.

'그림으로 쉽게 풀어쓴 인간학 교과서'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그래서 탁월하다. 본문 한 단원에 도해 한 장을 나란히 보여주는 편집 기법으로 방대한 《사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덕분이다. 그림과 일러스트,도표로 구성된 도해에는 주요 등장인물의 특성은 물론 주변 인물과 당시 시대상황,관련 지식까지 담겨 있어 역사 인물과 사건의 전후 맥락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가령 중국사의 서막을 연 황제헌원에 대해서는 요순으로 이어지는 선양(禪讓)의 평화적 정권교체 전통에 주목한다. 또 쉬지 않고 동진(東進)하면서 도성을 9차례나 동쪽으로 옮긴 진나라의 수도 변천사는 옛날 지명과 해당 군왕,현재 지명을 하나의 표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진시황의 공과도 분명하게 가른다. 군현제 실시와 문자 · 화폐 · 도량형의 통일은 공으로,분서갱유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으로 평가했다. 진나라의 거대한 토목공사는 두 쪽에 펼친 그림으로 설명한다. 만리장성,아방궁,도로 및 수로 공사,병마용과 지하궁 등의 공사내역이 그림과 함께 간결명료하게 설명돼 있다.

특히 《사기》 130권 중 서(書) 8권,표(表) 10권을 뺀 112권이 인물 이야기여서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중국사 최초로 농민반란을 일으킨 진섭(진승),유방의 장자였던 제나라 도혜왕,한나라 제일의 책사였던 장량,백이와 숙제,변법의 달인 상앙,세치 혀로 천하를 쥐락펴락했던 소진과 장의,한나라 제일의 청백리이자 대쪽 관리였던 급암 등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살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늠케 한다.

《사기》를 풀이한 스진 교수(시안대)가 "동(銅)을 거울로 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고,옛날을 거울로 삼으면 성쇠를 알 수 있고,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알 수 있다"는 당 태종 이세민의 말을 머릿말에 인용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