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인터뷰]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눈이 즐거워야 입도 즐겁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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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타일리스트 홍신애 씨
일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어려서부터 혼자 상을 차려 먹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땐 생일선물로 오븐을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 여고 시절에는 요리를 배우고 싶어 교복을 입은 채 백화점 문화센터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재미교포 남편과 결혼한 뒤에는 미국에서 애들을 키우면서 푸드 스타일리스트 공부를 시작했다.
뉴욕의 맛집에 대해 잡지와 홈페이지 등에 틈틈이 글을 쓴 것이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부르는 곳이 많아지자 아예 귀국해 회사를 차렸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홍신애씨(33 · 나인스파이스 대표).이제는 직원 4명을 두고 억대 수입을 올리는 '스타'다. 11일 오후 GS SHOP(GS홈쇼핑)의 녹화방송을 마친 홍 대표를 만났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사실 저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했어요. 푸드 스타일링을 가르치는 정규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뉴욕의 '뉴스쿨 유니버시티'에서 푸드 스타일링 과정을 거쳤고,한국의 궁중음식연구원 등에서도 다양한 과정을 배웠어요. 2006년 귀국 당시 블로그 등으로 이미 인터넷에서 인지도가 높은 상태였기 때문에 각종 TV 프로그램에 비교적 쉽게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죠.일거리도 많이 들어왔고요. 본격적으로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한국에 들어와서부터죠."
▼각종 방송 출연과 회사 · 카페 운영 등으로 바쁘다고 들었습니다.
"일주일에 세 번 GS SHOP의 '디토' 방송에 출연하고 MBC,EBS,육아방송 등의 요리 코너에도 나갑니다. 각종 제품에 등장하는 요리 촬영도 하고 여러 매체에 기고도 꾸준히 해요. 제가 운영하는 '나인스파이스'에서 강의도 하고,스튜디오의 일부를 개조해 카페로 만들어 영업도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영화 '홍길동의 후예'에서 탤런트 김자옥씨의 '손' 대역을 맡았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요리를 담당했어요. "
▼나인스파이스는 푸드 스타일링 업체인가요.
"나인스파이스는 '아홉 가지의 갖은 양념'이라는 뜻입니다. 갈비찜에 들어가는 양념이 아홉 가지거든요. 나인스파이스는 작업실을 겸한 스튜디오이자 푸드 스타일링 회사예요. 2006년에 만들었죠."
▼요리연구가나 파티 코디네이터,푸드 코디네이터 등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요리연구가는 각종 요리의 레시피를 개발하는 직업이고,파티 코디네이터는 파티의 전반적인 것을 주관합니다. 푸드 코디네이터는 테이블 코디네이터라고도 하는데 요리가 아닌 데코레이션(장식)을 관할하고 테이블 세팅을 주로 하죠."
▼그럼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요리의 스타일을 만드는 건가요?
"'눈으로 먹는 요리'를 만드는 일을 합니다. 메뉴 선정부터 사진 촬영까지 모든 걸 책임져요. 눈으로 먹는 요리의 핵심은 카메라 앞에서 음식이 살아 숨쉬게 하는 겁니다. 시청자들에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거죠.그러려면 맛은 물론 색감이 살아있어야 하고 '담음새'(담는 모양)도 중요해요. 먹었을 때 맛있는 요리와 화면을 통해서 맛있게 보이는 것은 다르거든요. 방송에 나가는 요리는 여러 대의 카메라가 촬영하므로 각도와 디테일에 신경써야 해요. 그래서 음식을 '출연자 시식용'과 '촬영용' 두 가지로 만들어요. "
▼상황과 주제,장소 등에 따라서 각기 다른 요리를 준비해야겠군요.
"가령 '편식하는 아이들을 위한 요리'라는 주문이 주어진다면 제 나름대로 레시피를 구상해 그 자리에서 선보여야 합니다. 요리 실력은 기본이고 자신만의 노하우도 있어야 해요. 저는 파티 음식과 어린이 요리 전문인데 편식하는 어린이를 위한 음식이라면 애들이 잘 안 먹는 버섯,콩 등의 채소를 자연스럽게 섞는 메뉴를 개발합니다. 호두파이처럼 만들면서 호두 대신 콩을 넣는 식이죠."
▼얼핏 듣기엔 화려한 직업 같습니다.
"그래서 환상을 갖고 뛰어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참 고된 일입니다. 음식 촬영이 있으면 어디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저희는 갈대밭에서도 주방을 차리거든요. 주방기기가 많이 좋아져서 차에 한가득 싣고 다닙니다. 처음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되면 냉장고 청소와 장보기,식탁보 다림질하기 등 허드렛일부터 시작합니다. 저희 실습생 10명 중 8명이 일주일 안에 그만둘 정도예요. "
▼맛있는 레스토랑에도 많이 가겠어요.
"저희에겐 회식이 업무의 연장입니다. 많이 먹어봐야 많이 알게 돼요. 샌드위치를 촬영할 땐 하루에 샌드위치만 10개 이상 먹습니다. 새로 개점한 레스토랑은 무조건 다 가서 새로운 메뉴에 대해 직원들과 품평회를 열죠.지난주에는 메추리조림을 먹으러 갔는데 음식과 접시의 조화가 어색하다는 신랄한 비평들이 나왔어요. 새로 나온 식품도 다 구입해 먹어보죠."
▼수많은 음식을 접하다보니 직업병이 생길 것 같습니다.
"대형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제품 패키지 사진부터 살핍니다. 음식 사진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어요. 도너츠 가게에 붙어있는 대형 사진을 보며 '도너츠 위에 뿌려진 가루의 오른쪽 부분이 뭉쳤다'고 평가하는 식이죠."
▼가장 잘 하는 음식은 뭔가요.
"남편과 아이들은 제가 끓인 된장찌개가 가장 맛있다고 해요. 친정어머니가 직접 담근 '엄마표 된장'에 고추장을 5분의1 정도 풀어서 같이 넣고 끓입니다. 사실 집에 가면 너무 피곤하기 때문에 음식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에요. "
▼국내 음식 문화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블로그도 활성화됐고요.
"맞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블로그에 요리와 레스토랑 사진을 올려 '와이프로거(와이프+블로거)'로 유명해졌습니다. 블로그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를 알릴 수 있는 게 장점인데 요즘엔 음식 블로그가 많이 변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나인스파이스 홈페이지 개설 10개월을 기념해 유명 맛집 블로거들을 모으는 자리를 마련하려 했는데 게시물 1개당 40만원씩 대가를 요구하는 분들이 꽤 많더군요. 이들이 종의 권력이 된 거죠.좀 놀랐습니다. "
▼정부에서 한식의 세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태국요리가 전 세계에서 로열 퀴진(고급 음식)으로 통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식의 조리방법과 재료,우리만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방향으로 가야 해요. 저는 요즘 한국 음식에 관한 영어책 발간 작업을 하고 있어요. 딱딱한 소개서가 아니라 쉬운 영어로 조곤조곤 설명하는 친절한 사진책인데 내년 4월께 미국과 영국 등에서 출판할 예정입니다. "
글=김정은/사진=정동헌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