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앙리의 핸드볼과 正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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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에리 앙리는 경기가 끝난 뒤 핸드볼 반칙을 시인했다. '승리를 도둑맞은' 아일랜드 언론과 축구팬들은 들끓었고 국제축구연맹(FIFA)은 재경기 요청을 묵살했다. 우리가 그런 처지였으면 어땠을까. 왜 아니랴.우리도 울분을 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월드컵 스위스와의 악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항의를 해도 소용없고 그래봤자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축구를 보며 열광한다. FIFA는 전 세계인이 보는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태연히 조추첨을 진행했다. 앙리가 시인한 핸드볼 도움으로 들어간 골은 프랑스의 본선진출을 결정했고,아일랜드의 탈락은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 무엇을 더 어쩌겠는가. 아일랜드의 울분에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역시 우리나라의 16강 진출 여부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잘못된 일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정의에 반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정의를 숭상하는 법에서조차 제소기간 제한,소멸시효,실효의 법리가 인정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히 오랜 시간이 경과해 기성질서를 번복할 수 없다거나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법정책적 이유를 들어 법에 반하는 행위나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기도 하고 또는 아예 그런 제도를 만들어 시행해 왔다. 그렇지만 확정된 판결에도 재심의 길이 열려 있고,또 어떤 행위가 무효,다시 말해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고 심각한 잘못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앙리의 핸드볼이 바로 그런 경우다. 시간이 오래 경과된 것도 아니고 기성사실이 쌓이지도 않았다. 이 문제가 터졌을 때 FIFA의 블래터 회장이 보인 태도는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두꺼운 얼굴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재경기를 허용할 경우 월드컵 지역예선으로 치러진 경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 모든 불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했을지도 모른다.
축구는 만인이 사랑하는 스포츠이고 월드컵은 그 가장 큰 축제이자 전 지구적 이벤트다. 사람들이 축구를 사랑하는 까닭은 박진감 넘치는 선수들의 플레이와 작전뿐만 아니라 그것이 공정하고 신사적인 게임의 모델을 가장 극명하게 구현해 주기 때문이다.
양팀이 미리 정해진 룰에 따라 최선을 다해 경기하고 심판이 중립적 위치에서 그 어느 편도 우대함이 없이 공정하게 규칙위반을 적발,제재하며 경기를 원활하게 이끈다는 이 게임의 모델은 공정한 게임의 정수이자 이념형이다. 경기나 시합은 물론이고 선거,정치,상거래,학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는 모델이다. 사람들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축구경기에서 바로 그런 공정성 모델이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명백한 오심이 있었고 그것이 승패를 갈랐다면 경기가 끝났더라도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물론 그런 기회가 지나치게 장기화되거나 잦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FIFA는 경기 직후 잘못을 고칠 기회를 놓쳤다. 많은 나라들이 아일랜드를 동정하면서도 FIFA의 재경기 불가 입장을 용인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것은 의아스럽다. FIFA가 민간기구여서일까. 국가나 재판기관에 들이대던 엄격한 공정성의 잣대는 찾을 길이 없다. FIFA의 권위주의나 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지만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민간기구라고 해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만인이 사랑하는 지구스포츠 축구를 위한 심판의 심판자로서 FIFA는 정당성과 신뢰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이번 일로 아일랜드가 축구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앞으로도 축구를 즐기고 또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공정한 게임의 이상이 손상되는 걸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관중들의 열광 속에서도 정의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그래도 사람들은 축구를 보며 열광한다. FIFA는 전 세계인이 보는 가운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태연히 조추첨을 진행했다. 앙리가 시인한 핸드볼 도움으로 들어간 골은 프랑스의 본선진출을 결정했고,아일랜드의 탈락은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 무엇을 더 어쩌겠는가. 아일랜드의 울분에 남의 일 같지 않다며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역시 우리나라의 16강 진출 여부에 관심을 쏟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잘못된 일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정의에 반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정의를 숭상하는 법에서조차 제소기간 제한,소멸시효,실효의 법리가 인정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특히 오랜 시간이 경과해 기성질서를 번복할 수 없다거나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는 법정책적 이유를 들어 법에 반하는 행위나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기도 하고 또는 아예 그런 제도를 만들어 시행해 왔다. 그렇지만 확정된 판결에도 재심의 길이 열려 있고,또 어떤 행위가 무효,다시 말해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고 심각한 잘못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앙리의 핸드볼이 바로 그런 경우다. 시간이 오래 경과된 것도 아니고 기성사실이 쌓이지도 않았다. 이 문제가 터졌을 때 FIFA의 블래터 회장이 보인 태도는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두꺼운 얼굴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이었다. 왜 그랬을까. 재경기를 허용할 경우 월드컵 지역예선으로 치러진 경기가 얼마나 많은데 그 모든 불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난감했을지도 모른다.
축구는 만인이 사랑하는 스포츠이고 월드컵은 그 가장 큰 축제이자 전 지구적 이벤트다. 사람들이 축구를 사랑하는 까닭은 박진감 넘치는 선수들의 플레이와 작전뿐만 아니라 그것이 공정하고 신사적인 게임의 모델을 가장 극명하게 구현해 주기 때문이다.
양팀이 미리 정해진 룰에 따라 최선을 다해 경기하고 심판이 중립적 위치에서 그 어느 편도 우대함이 없이 공정하게 규칙위반을 적발,제재하며 경기를 원활하게 이끈다는 이 게임의 모델은 공정한 게임의 정수이자 이념형이다. 경기나 시합은 물론이고 선거,정치,상거래,학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적용될 수 있는 모델이다. 사람들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축구경기에서 바로 그런 공정성 모델이 제대로 작동되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명백한 오심이 있었고 그것이 승패를 갈랐다면 경기가 끝났더라도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물론 그런 기회가 지나치게 장기화되거나 잦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FIFA는 경기 직후 잘못을 고칠 기회를 놓쳤다. 많은 나라들이 아일랜드를 동정하면서도 FIFA의 재경기 불가 입장을 용인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것은 의아스럽다. FIFA가 민간기구여서일까. 국가나 재판기관에 들이대던 엄격한 공정성의 잣대는 찾을 길이 없다. FIFA의 권위주의나 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이 계속됐지만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민간기구라고 해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만인이 사랑하는 지구스포츠 축구를 위한 심판의 심판자로서 FIFA는 정당성과 신뢰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이번 일로 아일랜드가 축구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앞으로도 축구를 즐기고 또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공정한 게임의 이상이 손상되는 걸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관중들의 열광 속에서도 정의의 정신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