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계에선 흔히 '현대 경제학의 교과서'로 폴 새뮤얼슨의 '경제학(Economics)'과 그레고리 맨큐의 '맨큐의 경제학'을 꼽는다. 두 책의 공통점은 쉽다는 것이다. 딱딱한 경제 이론을 재미있고 맛깔나게 풀어썼기 때문이다. 특히 새뮤얼슨의 '경제학'은 경제학자들에게 '공통의 언어'를 마련해 줬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독보적이다. 1948년 첫 선을 보인 이래 19판이 나와 400여만부가 팔려나갔을 정도로 장수하고 있으니 대단한 저력이다.

번역판만 해도 한국어 등 27개국어로 출간됐다. 이처럼 영향력이 크다 보니 책 내용을 놓고 경제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자유주의 경제이론을 견지하면서도 실업자를 구제하려면 재정적자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데 대해 일부 학자들이 정부 역할을 키우는 결과를 낳는다고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새뮤얼슨은 그런 논란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체계적 논술,그것은 누가 읽어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대응했다. 1915년 미국에서 태어난 새뮤얼슨은 16세 때 시카고대에 입학하면서 경제학에 눈을 떴다. 하버드대에서 석 · 박사학위를 받았으나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유대계이기 때문이란 소문이 돌았다. 1947년 MIT 교수에 임명됐고 1970년 미국인으론 첫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됐다.

새뮤얼슨은 대학자이면서도 겸손함을 갖춘데다 학점을 후하게 주기로 유명했다. 채찍보다는 격려를 소신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게 효과가 있었던지 그가 재직하는 동안 MIT 경제학부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고 그의 제자중에 로런스 클라인,조지 애컬로프,조지프 스티글리츠 등 3명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후보 시절 경제 고문으로 활동했으나 정작 케네디가 당선된 후 제안한 백악관 경제자문 위원장 자리를 거절하고 학계에 남는 길을 택했다.

새뮤얼슨은 '행복=소비÷욕망'이란 행복 방정식을 내놓았다. 행복해지려면 소비를 한없이 늘려야 하는 것으로 해석돼 물질만능적 사고를 드러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욕망을 줄인다면 소비를 늘리지 않아도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뛰어난 선승(禪僧)들이 욕망을 다스려 해탈에 이르려 한 것과 통하는 면이 있다. 13일 타계한 새뮤얼슨이 평생 경제학자로 일관된 삶을 산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는지 모른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