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유비무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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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숭모한다. 공교롭게도 나의 생일이 충무공 탄신일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 어린시절부터 나는 그의 열렬한 팬이었다. 충무공의 고매한 인품과 그가 어떻게 이 나라와 우리의 자존심을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냈는지에 대해서는 두말이 필요없지만,나는 그의 일생이야말로 유비무환의 완벽한 기념비라고 생각한다.
유비무환은 서경에 나오는 말로 "평안할 때 항상 위태로움을 준비해야 하며,충분한 준비가 돼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이라는 경구이다. 충무공의 인생 역정을 들여다 볼수록 존경의 마음과 함께 유비무환의 깊은 뜻을 배우게 된다.
충무공은 어려서부터 군인으로 살 것을 작심했으나 그 길은 순탄치 않았다. 출세길이 매우 늦은 군인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이력서는 소위 잘나가는 자리와는 거리가 먼 변방의 자리로 채워져 있었다. 32세 때 무과에 병과4급으로 급제한 것도 늦었지만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서산과 고흥의 수군부대와 함경도 등 최변방 요새의 군관으로 전전하며 오로지 군인의 길에 충실한 삶을 지켜나갔다. 임진년 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야 전라좌수영의 사령관 직에 오르고 그 즉시 나대용 장군과 함께 거북선의 건조와 화약제조창 정비에 착수하는데,우리나라의 역사에 그와 같이 철저히 준비된 장수를 꼭 필요한 자리에 갖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흔히 거북선을 충무공이 개발한 최고의 군사적 업적으로 꼽지만 사실 그의 군사적 천재성은 그보다 더 넓고 높은 수준이었다. 그가 왜군과의 전쟁을 예견하고 대비한 유비무환의 요체는 왜군이 배에 뛰어올라 싸우는 육박전에 능함을 주목해 그에 대비할 수 있는 다양한 전술과 군선을 정비한 데 있다. 특히 왜군의 병선에는 없는 사거리가 뛰어난 지자포 현자포 등 화포를 개발 정비하고 대량으로 조달해 병선에 장착한 것이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바탕이 됐다. 또한 당시 우리 수군은 열악한 보급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고의 사기와 전투력을 발휘했는데,이는 병사들의 후생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엄정한 논공행상을 통해 지휘관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을 이끌어낸 데 따른 것이었다.
충무공의 인생과 승리의 기록은 외골수로 군인의 길을 정진하고 매진한 것,자신과 조직의 능력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보완한 것,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철저하고 정확하게 분석한 것에 더해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을 통해 주변과 수하의 사람들을 단결시킨 것으로 채워졌는데 이 모두가 어우러져서 국가가 큰 위기를 만났을 때 무한한 힘을 발휘한 것이다. 지금도 불확실성과 변화의 시대를 대비하라는 수많은 지도자 이론과 슬로건이 넘쳐나지만 충무공이 일생을 통해 몸과 실행으로 보여준 것을 뛰어넘을 유비무환의 가르침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박철원 에스텍시스템회장 cwpark@s-tec.co.kr
유비무환은 서경에 나오는 말로 "평안할 때 항상 위태로움을 준비해야 하며,충분한 준비가 돼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이라는 경구이다. 충무공의 인생 역정을 들여다 볼수록 존경의 마음과 함께 유비무환의 깊은 뜻을 배우게 된다.
충무공은 어려서부터 군인으로 살 것을 작심했으나 그 길은 순탄치 않았다. 출세길이 매우 늦은 군인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이력서는 소위 잘나가는 자리와는 거리가 먼 변방의 자리로 채워져 있었다. 32세 때 무과에 병과4급으로 급제한 것도 늦었지만 4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서산과 고흥의 수군부대와 함경도 등 최변방 요새의 군관으로 전전하며 오로지 군인의 길에 충실한 삶을 지켜나갔다. 임진년 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야 전라좌수영의 사령관 직에 오르고 그 즉시 나대용 장군과 함께 거북선의 건조와 화약제조창 정비에 착수하는데,우리나라의 역사에 그와 같이 철저히 준비된 장수를 꼭 필요한 자리에 갖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흔히 거북선을 충무공이 개발한 최고의 군사적 업적으로 꼽지만 사실 그의 군사적 천재성은 그보다 더 넓고 높은 수준이었다. 그가 왜군과의 전쟁을 예견하고 대비한 유비무환의 요체는 왜군이 배에 뛰어올라 싸우는 육박전에 능함을 주목해 그에 대비할 수 있는 다양한 전술과 군선을 정비한 데 있다. 특히 왜군의 병선에는 없는 사거리가 뛰어난 지자포 현자포 등 화포를 개발 정비하고 대량으로 조달해 병선에 장착한 것이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 바탕이 됐다. 또한 당시 우리 수군은 열악한 보급 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고의 사기와 전투력을 발휘했는데,이는 병사들의 후생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엄정한 논공행상을 통해 지휘관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을 이끌어낸 데 따른 것이었다.
충무공의 인생과 승리의 기록은 외골수로 군인의 길을 정진하고 매진한 것,자신과 조직의 능력을 끊임없이 계발하고 보완한 것,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철저하고 정확하게 분석한 것에 더해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을 통해 주변과 수하의 사람들을 단결시킨 것으로 채워졌는데 이 모두가 어우러져서 국가가 큰 위기를 만났을 때 무한한 힘을 발휘한 것이다. 지금도 불확실성과 변화의 시대를 대비하라는 수많은 지도자 이론과 슬로건이 넘쳐나지만 충무공이 일생을 통해 몸과 실행으로 보여준 것을 뛰어넘을 유비무환의 가르침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박철원 에스텍시스템회장 cwpark@s-te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