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삼성의 선택] (上) COO 이재용의 '뉴 삼성' 키워드는 혁신·도전·패기
연말 삼성 인사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41)의 거취였다. 그저 한 단계 뛰어 부사장이 될 것이냐,아니면 경영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사장직 내지는 대표이사로 중용될 것이냐가 초점이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중용설'에 무게가 실렸다. 이 부사장이 올 들어 해외 주요 사업장들을 직접 챙기는 등 보폭을 부쩍 넓혀온 것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줬다.

반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삼성 특유의 조심스런 분위기와 아직은 현장 수업을 더 원하고 있다는 본인의 의지를 감안할 때 파격적인 승진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경영수업의 '마지막 코스' 밟는다

15일 발표된 삼성 인사내용은 팽팽했던 두 가지 관측을 절충시키는 방향으로 나타났다.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되 최고운영책임자(COO · Chief Operating Officer)라는 공식 직책을 부여한 것.COO는 최고경영자(CEO) ·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함께 경영을 관장하는 3대 축으로 일선 사업부를 지원하면서 사업부 간 기획 · 업무를 맡는 자리다. 이재용 부사장이 향후 반도체사업부장이나 무선사업부장 같은 현업 조직의 수장을 맡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경영수업의 '마지막 코스'로 볼 수 있다는 게 그룹 안팎의 지배적인 견해다. 삼성그룹은 이날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면서 "혁신과 도전을 선도하는 패기 있는 인물을 중용했다"고 밝혔다. 그 정점에 이 부사장이 있는 셈이다.

이 부사장은 앞으로 16만명에 달하는 삼성전자의 거대 조직과 본격적인 '소통'을 시작함으로써 경영시스템의 '매크로'와 '마이크로'를 동시에 들여다보는 기회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신임 이 부사장은 COO로서 자연스럽게 조직 장악력과 통솔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곧 몇 년 뒤 본격화될 '이재용 체제'의 밑그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사장이 이른바 'C 레벨'로 불리는 최고경영진 타이틀을 단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07년 1월 전무로 승진하면서 최고고객책임자(CCO · Chief Customer Officer)를 맡았다가 그룹 경영쇄신안을 발표했던 지난해 4월 이 자리에서 물러나 백의종군에 나섰다.

◆"피곤하다고 불평할 자격 없다"

때문에 이 부사장의 앞날을 장밋빛 일색으로만 덧칠할 수 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부가 글로벌시장에서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과거보다 훨씬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 최근 시장의 흐름이다. 인텔 애플 소니 샤프 등 세계적 강자들의 견제와 반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이 부사장으로선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이 부사장은 1991년 삼성전자 입사 이후 가장 큰 권한을 갖게 됐지만,그에 걸맞은 책임과 부담도 안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을 초일류기업의 반열에 올려 놓은 이건희 전 회장의 평가도 두려울 수밖에 없다. 이 전 회장은 20년에 가까운 경영수업을 거친 뒤 45세가 돼서야 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그의 대외접촉도 단기간에 활발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부사장은 그동안 경영권 승계 문제와 관련해 시종 '겸허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지난해 9월 캐나다 캘거리 스탬피드파크에서 열린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는 "나는 사는 것이 피곤하다고 불평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그가 맡게 된 COO라는 자리는 자신의 시대를 열기 위한 초석인 동시에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이는 시험무대인 셈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

●이재용 누구인가

1991년 삼성전자 입사
2001년부터 본격 경영수업

이재용 부사장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장남이다. 1991년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삼성에 부장으로 입사했다. 부장 시절 일본 게이오대와 하버드 비즈니스스쿨로 유학을 떠났다가 2001년 삼성전자 경영기획실 상무보로 복귀했다. 상무와 전무 승진 시기는 각각 2003년 2월과 2007년 1월이다.

이 부사장의 경영수업은 유학에서 돌아온 2001년부터 시작됐지만 경영진의 일원으로 합류한 것은 2004년부터다. 당시 이 전무는 삼성전자와 소니가 합작한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됐었다.

해외 거래선 관리의 임무가 주어진 것은 2007년 1월 CCO(최고고객책임자)를 맡으면서부터다. CCO 생활은 길지 않았다. 삼성그룹 경영쇄신안이 발표됐던 2008년 4월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에 책임을 지고 CCO 보직을 내놓았던 것.그는 최근까지 별도의 보직이 없는 상태로 해외 주요 시장을 돌며 글로벌 감각을 키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