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들린다. 상당수 나라들이 과도한 빚에 짓눌려 국가 신용등급이 하락하거나 강등당할 위기에 몰려 있다. 자칫 유럽이 금융위기 재발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그 중심에는 이른바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로 불리는 나라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됐고 스페인도 신용등급 전망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아일랜드는 이미 지난 4월 신용등급이 내려앉았다.

PIGS에 대해 국제적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것은 정부 부채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부풀어 오른 데다 재정적자도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그리스의 경우 올해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12.7%까지 확대되고 정부 부채는 GDP의 113.4%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탈리아도 정부 부채가 GDP의 100%를 훨씬 초과한다. PIGS 국가들은 연간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10%를 넘어서는 것도 예사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 못지않은 충격이 올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실제 멕시코 등 다른 지역으로 불안이 확산되는 조짐도 있어 걱정이 크다.

신용평가사들이 나라 빚을 이유로 신용등급을 조정하고 있는 것은 부채 규모가 이미 과도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빚을 늘리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정부 부채 또한 PIGS 국가들에 못지않은 수준임을 감안하면 세계적으로 재정확대정책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른바 출구전략의 시행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따져봐야 할 것은 우리는 과연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가 하는 점이다. 정부는 현재 국가채무(366조원)가 GDP 대비 3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의 절반을 밑돌아 재정건전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채무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 2004년 202조원이던 것이 지난해 300조원을 돌파했고 내년엔 다시 400조원을 넘어서게 된다.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다. 정부는 중기재정운용계획을 통해 이 비율을 30%대에서 안정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세수 부진 등이 이어진다면 40%선을 넘어서는 것도 시간문제일 수 있다.

국가 채무 규모 자체가 과소 계상됐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과 달리 정부 보증채무와 준정부기관 채무 등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포함하면 국가채무가 1000조원 안팎에 이른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특히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의 경우는 지난해 말 현재 사실상의 국가부채가 1439조원에 달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준정부기관 및 공기업 부채(212조원)는 물론 4대 공적연금 책임준비금 부족액(744조원)까지 합한 결과다.

실제 LH공사 수자원공사 같은 공기업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떠넘기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또 이들의 부채를 사실상 정부가 감당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국가채무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나라당 김성식 의원이 10대 공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2007년 120조원이던 부채 총액이 2012년엔 301조원으로 급팽창하고 5년간 이자만 45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공기업 부채가 급증하면서 지난달에는 LH공사가 발행한 채권이 시장에서 소화되지 못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시장의 신뢰가 예전같지 않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금의 경기 상황에서 확장정책 기조를 당장 중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내외에서 국가채무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빚이 지나치게 부풀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 나가는 한편 국가채무 통계를 국제 비교가 가능하도록 개편해 확실한 판단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