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前회장, 징계취소 소송…족쇄 벗어날까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파생상품 투자 손실과 관련한 금융위원회의 징계를 취소해 달라며 16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금융위는 이미 황 전 회장이 위법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며 "소송을 제기하면 절차에 따라 법정에서 다투면 될 것"이라고 말해 소송 결과가 주목된다.

황 전 회장은 이날 법무법인 세종을 통해 서울행정법원에 '제재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냈다. 황 전 회장 측 관계자는 "황 전 회장은 군대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하면 부대장이 감독 책임을 지는 것처럼 최고경영자(CEO)로서 투자 손실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KB금융 회장직을 사퇴했다"면서 "하지만 법을 위반한 사실은 없으며 경영자들이 과정과 절차의 적합성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쁘면 징계를 당하는 나쁜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소송 제기 배경을 설명했다.

황 전 회장은 2005~2007년 우리은행이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파생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관련 법규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난 9월 금융위로부터 '직무정지 3개월 상당'의 징계를 받았다. 이로 인해 황 전 회장은 이후 4년간 금융기관 임원으로 취업할 수 없게 됐고 지난 9월 말 KB금융지주 회장에서 자진 사퇴했다. 황 전 회장의 행정소송 시한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위법 부당행위 통보장을 받은 지난 10월1일 이후 90일인 이달 30일까지다.

황 전 회장은 우리금융의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우리은행을 통해 자신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에 대비해왔으나,최근 예보의 기류가 소송을 내지 않는 쪽으로 흐르자 자신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문제를 고민해왔다. 황 전 회장의 행정소송 시한이 지난 뒤 예보 경영진이 교체돼 소송을 낼 경우 재산 가압류는 물론 개인 활동에도 사실상 족쇄가 채워지기 때문이다.

황 전 회장은 소장에서 CDO와 CDS 투자에 대해 사전에 관여하거나 사후 보고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고의로 법을 위반했거나 금융회사 건전성을 해치는 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금융위 제재의 근거가 된 은행법 54조 1항은 행위 규제에 대한 법률일 뿐 경영 결과에 책임을 묻는 법이 아니어서 자신의 징계에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취업 금지 등 개인의 이익을 침해하는 조치는 증거가 명백해야 하지만 금융당국은 황 회장이 사실상의 지시를 내려 은행에 손실을 입혔다고 주장할 뿐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황 전 회장은 "당시 CEO를 맡고 있었던 만큼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법을 어겼다는 금융당국의 판단은 결코 수긍할 수 없다"며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고 당시 상황에서는 문제가 없는 채권에 규정과 절차에 맞춰 투자한 우리은행 직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