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손숙씨(65)와 추상미씨(36)에게 연극 '가을소나타'의 무대는 처음이지만 낯설지 않다. 영화 '제7의 봉인'으로 유명한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이 작품은 7년 만에 만난 피아니스트 샬롯과 그의 딸 에바의 애증 관계를 다룬다. 각각 샬롯과 에바를 연기한 손씨와 추씨는 극의 내용이 자신들의 개인사와 많이 닮았다고 말한다. 손씨는 "유명 피아니스트인 샬롯의 바쁜 연주 일정이 딸에게 상처를 준다는 내용은 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저도 한번은 딸을 입원시키고 공연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그때는 몰랐지만 이번 공연을 하면서 그런 것들이 아이에게 상처였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

반면 추씨는 에바처럼 부모의 보살핌을 더 받길 바라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당대 최고의 성격파 배우였던 고(故) 추송웅씨의 딸인 그는 "어렸을 적 아버지가 순회 공연을 떠나지 못하도록 기도하곤 했는데 똑같은 내용이 작품에 있어서 신기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 역까지 해야했던 어머니도 잔정을 많이 주시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을 손씨가 '반성문',추씨가 '고문'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내년 1월10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르는 '가을소나타'의 모녀 관계는 상식을 깬다. 전통적인 모녀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이 연극에선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고 연민을 느끼는 딸의 모습을 찾아볼 순 없다. 손씨는 "이제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는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이 시대의 모녀 이야기에 가깝다"며 "애정보다는 애증 관계일 수밖에 없는 가족들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시간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추씨도 "남은 용서하기 쉽지만 가족은 쌓인 것이 많아서 도리어 용서하는데 어려움이 크다"며 "화해의 과정을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의 원작이 '연극같은 영화'로 불리지만 실제 무대로 옮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주어진 것은 영화 시나리오뿐이었고 클로즈업 등 영화만의 표현 기법이 효과적으로 사용된 원작의 느낌을 연극에서 오롯이 전달하기 위해서는 고된 과정이 필요했다. 손씨는 "맨땅에 헤딩하듯 만들었다"며 "특히 작품이 여성들의 속내를 다뤄서 여성 연출가와 배우들이 몇 달 동안 매일 회의하면서 수다를 떨다보니 비밀이 없어졌다"고 웃었다. 추씨는 "섬세한 연기를 많이 요구하는 작품인데 소극장이 아닌 대극장 무대에 올려져 처음엔 당황했다"며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은 있지만 첫 일주일 공연은 힘들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계획에 대해 손씨는 "연출가 김석만씨가 몇 년 동안 제 자서전같은 작품을 준비했는데 내년에 드디어 그 공연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추씨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연극을 꾸준히 하고 싶고 무엇보다 이제 2세를 낳아야 한다"고 웃었다. (02)577-1987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