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 움직임은 주총 시즌인 지난 3월부터 포착됐다. 당시 국민연금은 경영권 분쟁이 있었던 환인제약과 한단정보통신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해 주목을 받았다. 특히 한단정보통신의 경우 현 경영진과 대결했던 투자자문사의 손을 일부 들어주기도 했다.

실제 국민연금은 올 들어 11월까지 열린 484회의 주총에 올라온 1982개 안건 가운데 129건(6.5%)을 반대했다. 국민연금의 2004년 반대 비율이 1.4%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크게 높아진 것이다. 2008년 반대 비율은 5.4%였다. 국민연금이 주총에서 더 이상 '거수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적극적 주주권 행사의 전조를 보였다고도 할 수 있다. KB금융지주의 사외이사 추천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올해 129건의 반대 의견 가운데는 '이사 및 감사 선임'(54.3%) 반대가 가장 많았으며 다음은 '정관 변경'(36.4%),'이사 및 감사의 보상'(4.7%) 등의 순이었다. 이사 및 감사 선임을 반대한 이유는 사외이사 및 감사의 9년 이상 재직으로 인한 독립성 결여가 23건,이사회 출석률 기준 미달이 20건,최근 5년 이내 계열사 상근 임직원 근무가 16건 등이었다.

지난 4일 열린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에서는 현재 행사하고 있는 주주권과 향후 검토 가능한 적극적 주주권 행사 방안이 논의됐다.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장 · 단점과 위원회의 확대 개편 필요성도 함께 다뤄졌다.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따른 마찰을 피하기 위해 투자 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힘쓰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경영 간섭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수 있어 단기간에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전문위원회에서 공식 논의된 것은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정하고 검토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어 향후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영에 간섭하지 않고 단순 투자만 한다'는 지금의 입장에서 투자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어느 정도의 주주권 행사는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경영진 문책이나 배당 요구,이사 선임 등에서 목소리를 낼 경우 경영진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LG전자 KT KB금융지주 등 국내 간판 기업들의 대주주로 현재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사만 140여개에 달한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