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영화의 원조는 1922년 만들어진 '노스페라투'다. 영국 괴기소설가 브람 스토커(1847~1912)의 '드라큘라'를 토대로 제작돼 공포영화의 고전이 됐다. 1931년 작 '드라큘라'에서 송곳니와 올백 머리의 드라큘라 이미지가 도입된 데 이어 '드라큘라의 공포'(1958년)에선 미녀의 목을 물어뜯는 성(性)적 코드가 등장했다. 실존적 고뇌를 하는 흡혈귀를 그린 '뱀파이어와의 인터뷰'(1994년),인간과 흡혈귀 혼혈이 벌이는 액션활극 '블레이드'(2004년) 등으로 주제는 다양해졌지만 뱀파이어는 언제나 어둠속의 존재였다.

이처럼 공포를 몰고 다녔던 뱀파이어가 선망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것도 주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다. 지난해 말 개봉돼 전 세계에서 3억8000만달러를 벌어들인 뱀파이어 영화 '트와일라잇'이 기폭제였다. 에드워드라는 이름의 '꽃미남 뱀파이어'를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과 여주인공 벨라 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일약 스타로 부상했고 영화 세트가 지어진 워싱턴주 포크스 마을은 명소가 됐다. '트와일라잇'의 속편 '뉴문'도 개봉 2주 만에 제작비의 몇 배를 챙겼다. 국내에서의 관심도 뜨겁다. '뉴문'과 영화 OST가 차트 상위권에 올랐고 원작소설 시리즈 4편도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동시에 들었다.

꽃미남 뱀파이어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간단하다. 음침한 성에서 밤에 사람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것과는 거리가 먼 순정의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트와일라잇'의 주인공은 강력한 힘을 가진 꽃미남으로 대낮에도 버젓이 다닐 뿐더러 요즘 유행하는 옷을 입는다. '뉴문'에선 본의 아니게 흡혈본능이 발현될까봐 여주인공과 가슴 저린 이별을 고한다. 이렇다 보니 판타지에 익숙한 젊은 세대에게 매혹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트와일라잇'의 원작자 스테파니 메이어가 영화화의 조건으로 "절대로 송곳니와 관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토를 단 것도 이런 맥락에서일 게다.

뱀파이어 붐을 경제위기와 연관시키는 시각도 있다. 소득 감소와 일자리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한 시대에 '막강한 힘을 지닌 영생(永生)의 존재'로서의 뱀파이어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불안한 현실을 잊고 뱀파이어에게서 위안을 얻으려 한다니 이해는 간다. 하지만 초월적 존재에 너무 빠져들어선 곤란하다. 잠깐의 기쁨과 긴 고난으로 채워지게 마련인 삶을 헤쳐나가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