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노사관계에서 '긍정적 변화'의 단초가 곳곳에서 나타난 한 해였다. 노사 간 대립구도는 변함없이 이어졌지만 갈등의 진폭은 어느 때보다 작았다. 게다가 노사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거와는 다른 상생의 모습을 보여줬다. 연초부터 노사는 경제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노사민정 대화합을 이끌어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고,최근에는 13년간 해법을 찾지 못했던 '복수노조 · 전임자 임금 금지' 문제에 대해 극적인 합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대립과 반목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본격화된 경제위기로 수많은 기업이 구조조정에 나섰고,공기업을 중심으로 초임 삭감이 확산되면서 노사 갈등의 불씨로 작용했다. 지난 7월 비정규직 관련법 시행을 앞두고는 노동계와 정부,재계가 각각 다른 목소리를 내며 충돌 양상을 빚었다. 하반기에는 복수노조 ·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의 시행 문제를 두고 노 · 사 · 정 간 충돌 양상을 보였고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해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노 · 사 · 정이 고통분담을 통해 이끌어낸 합의 사항,작년에 비해 4분의 1 이상 줄어든 노사파업 일수,전국적 각 사업장에 붐을 일으켰던 노사화합 선언 등은 올해 노사관계가 한층 성숙됐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최근 '2010년을 노사관계 선진화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도 올해 노사관계가 보여준 희망의 불씨 덕분이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노사민정 협력 우수사례 시상식,그리고 21일 서울 강남 GS타워에서 열리는 노사상생협력 유공자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선정된 기업들과 지방자치단체는 바로 올해 이 같은 노사상생의 의미를 보여준 주인공들이다. 21일 시상식에서는 한전원자력연료,연세의료원,중앙고속,대한제강,영진,웅진케미칼,한국방송광고공사 등 7곳이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앞서 11일 열린 노사민정 협력 우수사례 시상식에서는 경기도,충청북도,부천시,순천시 등 4곳의 자치단체가 최우수 사례로 뽑혀 대통령상을 받았다.

한전원자력연료는 올해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선진화의 모범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이 회사는 평소 보육비,학자금 지원,현장실무 교육 및 해외훈련,행복일터 조성프로그램 등 다양한 복지제도와 교육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근로자들과의 소통에 주력해왔다.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 향상에 노력해온 덕에 올해 사측이 제안한 임금 동결도 노측이 흔쾌히 수용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거의 매년 11개 한국전력 그룹사 중 가장 처음으로 임금협약을 체결해왔다.

연세대 의료원은 서울 지역 병원 중 처음으로 자율교섭을 통해 필수유지업무 협정을 체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1963년 의료기관 중 최초로 노조가 설립된 후 순탄한 노사관계를 유지해오다 2007년 장기 파업으로 갈등이 크게 고조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경제위기가 오히려 노사 간에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10월 의료기관 중 처음으로 노사화합을 선언했고 이후 사측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복지 개선 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노조도 유연한 임단협 태도를 보이며 2년 연속 양보교섭에 나섰다.

중앙고속은 30여년째 노사협의회를 운영하며 운수업계의 노사 모범업체로 일찌감치 이름을 떨쳤다. 올해까지 38년째 무분규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사측의 남다른 복지정책은 다른 업체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사무실 구조를 바꿔 기사 휴게공간과 침대를 마련하고 매년 네 차례 특수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올해는 화성시보건소 등과 공동으로 사원을 대상으로 한 금연운동을 펼쳤다.

지자체 중에서는 경기도가 노사상생협력 부문에서 올해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 3월부터 산하 25개 시 · 군이 잇따라 노 · 사 · 정 간담회를 갖고 대타협 선언문을 내놨다. 하이닉스와 영진약품 등 60여곳의 지역 기업들도 동참했고 10개의 공공기관도 뒤를 따랐다. 지역 기업과 공공기관 노조들이 대부분 강성노조인 민주노총 산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성과였다. 특히 경기도는 올해 노사 간의 큰 갈등을 비교적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쌍용차 평택공장의 파업이 그것이다. 쌍용차 평택공장은 지난 5월부터 77일간 옥쇄파업을 이어갔고 평택시 전체에 큰 혼란과 어려움을 가져다줬다. 경기도는 정부에 이 지역을 고용개발촉진지역으로 지정해 주도록 요청했고 도 차원의 지원금도 집행하는 등 평택 지역 고용난을 해결하는 데 역점을 뒀다. 평택시 사태 이후 노사상생 모델의 구축이 시급하다는 판단으로 지난 8월부터 대학 교수와 경기개발연구원,민간 노동 관련 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노사 상생포럼'을 결성하기도 했다.

순천시는 4회에 걸쳐 노사민정 공동 산업평화 선포대회와 노사화합 한마당 행사 등을 개최하고 노사화합 워크숍,관련 포럼 등을 여는 등 올해 경제위기를 맞아 노사 소통을 강화하는 데 애쓴 공로를 인정받았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