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어디로 출근해야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재정부 예산실 국장)

요즘 기획재정부 예산실 공무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의 국회통과 여부가 여야 대치국면으로 안개 속을 헤매고 있어서다. 출근지도 매일 아침 관련 공무원들끼리 상호 연락을 통해 정하고 있다. 국회의 예산안 처리에 대응하려면 여의도 의사당으로 출근해야 하지만 연내 국회통과가 어려울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선 과천종합청사에서 별도 대책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산실 직원들은 고육지책으로 절반씩 번갈아가면서 여의도와 과천을 오가는 방법을 택했다. 이들의 상당수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며 국회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예산실 사람들은 "이렇게 고생을 하더라도 예산안이 연내에만 처리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만큼 급박하고 간절하다. 예산안 처리는 이미 헌법이 정한 시한(다음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인 12월2일을 넘겨버린 상태다. 연내에 처리되지 못할 경우에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산인 '준(準)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준예산제도는 국가 기능을 유지하는 선에서만 예산 투입이 허용된다. 때문에 공공 일자리 관련 사업과,주택 · 전세자금 대출 등 민생 관련 사업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상반기 재정지출 확대에 이어 하반기 민간투자 확대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해 나가겠다는 내년도 전체 경제운용의 틀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올해 힘겹게 쌓아올린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고영선 박사는 "경제 운용이 정치 논리에 뒤틀려버릴 경우 G20(주요 20개국) 의장국 선임을 계기로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국가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준예산제도는 1960년 정부체제를 의원내각제로 전환하면서 내각 총사퇴 또는 의회해산을 전제로 도입한 제도다. 따라서 '의회 해산'의 개념이 없는 대통령제에서는 무의미하다. 실제 준예산은 집행대상과 절차 등 구체적 규정도 없어 지난 40여년간 한번도 집행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국가비상사태에만 적용할 수 있는 제도인 셈이다.

만약 예산안 처리가 끝내 해를 넘길 경우 국민들은 당연히 국회에 물어볼 것이다. "지금이 국가 비상사태냐고…."도대체 어떤 명분과 실리를 위해 경제와 민생을 희생시켰느냐고 말이다.

박신영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