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空…" 조각에 응축해낸 치열한 삶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국 근·현대조각의 거장 故권진규
22일부터 덕수궁 미술관서 작품전
22일부터 덕수궁 미술관서 작품전
1973년 5월4일 아침,조각가 권진규씨(1922~1973년)는 고려대 박물관에 들러 자신의 작품을 둘러본 뒤 오후 6시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유서에는 '인생은 공(空),파멸'이 적혀 있었다. 권씨는 조형 예술분야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간 작가로 명성이 높다.
한국 근 · 현대 조각의 거장 권씨의 작품전이 22일부터 내년 2월28일까지 서울 덕수궁 미술관에서 펼쳐진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권씨는 1945년 서울에서 살면서 화가 이쾌대에게 미술 지도를 받았다. 1948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의 전신인 무사시노 미술학교 조각과에서 수학했고,1959년 귀국한 후 테라코타(구운 흙)와 건칠(乾漆)을 이용한 두상과 흉상 작업을 통해 독창적인 작업세계를 구축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졸업 작품을 비롯해 조각 100여점,드로잉 40점,석고틀 1점 등 모두 150여점이 출품됐다. 또 권씨의 스승인 시미즈 다카시(1897~1981년)의 작품 12점과 부르델(1861~1929년)의 부조 작품 5점이 함께 소개돼 권씨의 작품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장은 '학창시절'을 비롯해 '인물상''자소상''동물상''부조''시미즈 다카시와 부르델' 등 6개 섹션으로 나눠 꾸며졌다.
먼저 '인물상' 섹션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조각은 제자인 장지원을 모델로 한 '지원'을 비롯해 '영희''홍자''명자' 등 주변의 여인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길게 내민 목과 사선으로 좁게 처리된 어깨가 특징이다. 또 갸름한 얼굴에 비해 목이나 의상을 투박하게 처리해 외양보다는 내면의 정신세계를 포착하려 했다.
서양화가 김병종씨는 "특히 앞쪽으로 목을 길게 내민 것은 마치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는 구도자의 자세처럼 느껴져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를 짐작하게 한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섹션에서는 일본 유학시절 제작한 브론즈 작품 '남자 입상''청년'과 석고를 사용한 누드 입상 '나부' 등을 만날 수 있다. 대학 졸업 작품으로 처음 공개된 '나부'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양감을 표출하고 있어 그의 조형적 실험정신을 느낄 수 있다.
'부조'섹션의 작품 '코메디'는 구상과 추상의 접점을 가장 잘 드러냈다는 평가다. 선의 리듬감과 색채,조형을 만드는 손의 느낌이 작품의 표면에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초반 주로 제작한 첫 번째 부인 도모의 얼굴을 비롯해 1970년대까지 이어진 '마두' 시리즈와 '자소상'도 삶과 내세의 중간지점에서 인간의 영혼을 끌어내는 마력을 드러내는 작품들로 눈길을 붙잡는다.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일본 도쿄국립근대미술관과 무사시노미술대학 미술자료도서관과 함께 기획했다"며 "근 · 현대 조각의 선구자인 권씨의 예술인생의 족적을 살펴볼 수 있다는 기회"라고 말했다.
부대 행사로는 22일 오전 11시 권진규전 국제학술행사가 열리며,전시 기간 중에는 한국현대미술사(1950~1970년)와 한국 근 · 현대조각,작가 권진규를 살펴보기 위한 '릴레이 강연회'가 총 4회 개최된다. (02)2022-06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