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성패를 가르는 핵심은 기회 포착 능력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대공황 재연 우려가 지배했던 올 한 해 미국이 대공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 베팅해 70억달러(약 8조3000억원)를 벌어들인 헤지펀드가 있어 주목된다.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데이비드 테퍼 회장(사진)이 운용하는 아팔루사 매니지먼트는 올 들어서만 7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테퍼 회장은 이 가운데 25억달러(약 3조원) 이상을 챙기게 됐다.

투자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팔루사는 지난 2,3월 주당 3달러를 밑도는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식과 1달러 이하로 떨어진 씨티그룹 우선주를 대량으로 사들였다. 구제금융을 받은 대형 은행들이 국유화될 것이란 소문이 확산되는 등 은행 앞날을 한치도 내다보기 어려울 때였다. 은행이 조만간 정상화될 것이란 인식에 동조하는 다른 펀드들조차 아팔루사의 과도한 은행주 투자를 우려할 정도였다. 테퍼 회장은 아무도 은행주를 거들떠보지 않는데 자신만 사는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통화당국의 이례적인 양적완화 조치 등에 힘입어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아가면서 테퍼 회장은 엄청난 결실을 맺었다. 이달 초까지 수수료를 빼고서도 120%의 수익률을 올렸다. 헤지펀드의 올 평균 수익률(19%)에 비해 6배가량 높은 것이다. 자산운용 규모도 120억달러로 3년 새 3배로 불어났다.

테퍼 회장은 최근 또다시 '외로운 투자'에 손길을 뻗치고 있다. 남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상업용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증권 20억달러어치를 사들인 것이다. 뉴욕 등지에서 지난 2년 동안 값이 뚝 떨어진 상업용 빌딩을 기초로 만든 증권이다. 주위에서 자칫 그동안 애써 번 것을 날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지만 테퍼 회장은 낙관적이다. 경제가 살아나면 부동산 시장도 회복될 것이란 믿음에서다.

피츠버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테퍼 회장은 카네기멜론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골드만삭스에서 정크본드 트레이딩 업무를 하다가 1993년 독립,아팔루사를 설립했다. 운동화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그는 상황 변화에 따른 포트폴리오 재구축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왔다. 1997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채무상환유예) 위기에서도 러시아에 투자해 2년 후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금융위기 발발 직전인 2007년에는 철강 석탄 등 원자재 가격 폭등을 정확하게 예측한 투자로 떼돈을 벌기도 했다.

그는 돈을 많이 벌지만 겸손하고 검소하다. 1990년 120만달러에 구입한 뉴저지 2층 집에 그대로 살고 있다. 최근에는 자신과 연고가 있는 피츠버그 스틸러스 아메리칸풋볼팀을 인수했다. 2004년에는 모교인 카네기멜론 경영대에 5500만달러를 기부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