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 매서운 한파가 몰아친 지난 18일 저녁 서울 강동구 고덕시영아파트 현이(5)네 집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산타클로스 옷을 입은 한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치자 놀란 현이가 울음보를 터뜨린 것이다. 산타클로스가 된 사람들은 동양종금증권의 유준열 사장을 비롯한 임직원들.저소득 장애인 가정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해주기 위해 나선 산타클로스들은 현이가 울어대자 아이 달래기부터 시작했다. 준비해 간 조립식 크리스마스 트리를 꺼내 현이의 쌍둥이 형제인 건이와 함께 만들기 시작했다.

건이와 산타클로스가 색색의 방울과 전구를 달아 마침내 트리에 화려한 불이 들어오자 현이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건이가 "아빠 저 불빛 반짝이는 거 봐"라며 손뼉을 치고 좋아하는 것과 달리 현이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연신 "우와"하고 탄성만 질렀다.

◆산타클로스로 변한 사장님

현이는 선천성 심장병인 동맥관개존증으로 수술을 받다가 뇌병변장애를 얻었다. 그래서 목을 가누기가 어렵다. 말도 잘하지 못한다. 현이 가족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현이 엄마가 쌍둥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것.위암 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다시 재발해 한 달에 한 번씩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현이 아빠는 아내 간병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돈벌이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산타 삼촌들과 산타 이모들 덕분에 현이와 건이가 행복한 연말 저녁을 보내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현이네에게 선물과 생필품을 한아름 전달한 유 사장 일행은 곧바로 서울 천호동의 반지하방에 사는 성훈씨(23) 집을 방문했다. 성훈씨 가족은 동생 성준씨(21)와 어머니까지 셋이다. 형제가 모두 지적장애를 갖고 있다. 어머니는 지적장애에 시각장애가 겹쳐 있다. 성훈씨와 성준씨는 낯선 사람들의 방문에 수줍어하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희망한 오디오를 보자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어야겠다며 CD를 찾느라 방안을 뒤졌다. 어머니는 전기밥솥 선물을 받아들고는 연신 "고맙습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동양종금증권 직원들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함께 만들고,주방 싱크대에 가득 쌓인 설거지거리도 치웠다. 유 사장은 "함께 있는 동안 성훈씨가 '난 중학교 졸업했어… 일하고 싶은데… 난 일하고 싶은데'라는 혼잣말을 계속한 것이 눈에 밟힌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기획

현이네와 성훈씨네에게 모처럼 따뜻한 연말을 선물해준 주인공은 유 사장을 비롯한 동양종금증권 임직원들이다. 이 행사를 기획한 주체는 동양종금증권의 사내 봉사단체인 '동행'.'동양이 만드는 행복한 세상'의 앞글자를 따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봉사단체다. 동행 회원들은 소외계층과 저소득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꾸준한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다. 연말을 맞아 의미있는 봉사활동을 찾던 중 고덕동에 있는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www.seoulrehab.or.kr)과 인연이 닿았다.

동행 회원들은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을 통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장애인 가정 18곳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은 물건이 무엇인지 조사해 선물을 준비했다. 동행의 대표를 맡고 있는 골드센터강남점 안성숙 대리는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활동이라서 산타클로스 옷을 입고 찾아가 선물을 전달하기로 했다"며 "각 가정에서 도움을 바라는 청소나 장애아동 돌보기 같은 일도 함께 해 '일일 산타 봉사활동'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말했다.

전날 4가구에 이어 이날은 43명이 참여해 10개 조로 나뉘어 14가구를 방문했다. 동행 회원들의 따뜻한 마음에 공감한 유 사장과 임원들도 이들을 따라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소중한 체험에 가슴 따뜻해져"

이날 봉사활동을 마친 동행 회원들은 "짧지만 행복한 순간이었다"며 "소중한 체험으로 가슴이 따뜻해져 기쁘다"고 웃음지었다. 동행 회원들은 내년 봄엔 이번에 인연을 맺은 가정을 비롯해 저소득 장애인 가정들을 초청해 놀이동산으로 봄나들이 가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1983년부터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일하다 올해 말 정년을 맞는 김명순 삐에따스 관장 수녀는 "동양종금증권의 이번 활동처럼 많은 사람이 장애인 가정을 직접 방문해 봉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특히 장애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미리 조사해서 선물한 것이 더 큰 기쁨을 가져다줬다"고 고마워했다.

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