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화설비 확충..새성장 동력원 개발로 사업영역 확대
유화 부문은 `완만한 상승세 지속' 전망


2009년 정유업계는 시련의 한 해였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석유제품 수요 감소와 인도, 중국, 베트남 지역의 정유시설 증설에 따른 공급 과잉으로 제품가격이 하락하고, 정제마진이 축소되는 등 그 어느 해보다 악재가 많았다.

올 들어 원유를 정제해 얻는 단순 마진은 1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이너스를 기록해 정유사들은 석유제품을 만들어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았다.

이는 고스란히 실적으로 반영됐다.

올해 3분기 석유화학부문을 제외한 정유부문 실적을 보면, SK에너지는 1천957억원, GS칼텍스는 1천473억원, 에쓰오일은 70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정유사의 주력 업종인 석유사업에서 참담한 실적을 거둔 것이다.

회사 규모가 큰 순서대로 영업손실의 규모도 컸던 것은 개별 기업의 마케팅 역량만으로는 수요감소와 공급과잉 등 겹겹의 악재를 벗어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반면 석유화학부문은 호조를 이뤄 정유부문의 부진을 만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국의 내수 부양 정책에 따른 수요 증대로 석유화학제품 가격이 강세를 보였고, 중동 신규 설비의 가동 지연으로 국내 업계가 간접적 혜택을 봤기 때문이다.

정유부문에서 수요감소와 공급과잉이라는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상황에 빠진 SK에너지, GS칼텍스 등 국내 주요 에너지 기업들은 여기서 벗어나고자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본업인 정유사업의 생존을 위해 고도화설비 투자를 늘리는 한편, 기존 정유회사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특히 원유에서 석유제품을 직접 뽑아내는 과정에서 생기는 단순정제 마진으로는 생존이 점점 어려워지자 저부가가치 유종인 벙커C유에서 경유 등을 뽑아내는 고도화설비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GS칼텍스는 현재 하루 9만4천 배럴 규모의 제1중질유 분해시설과 하루 6만1천 배럴의 제2중질유 분해탈황시설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GS칼텍스가 보유한 원유정제능력의 21%에 해당하는 규모다.

GS칼텍스는 여기에 하루 11만3천 배럴 규모의 제3중질유 분해탈황시설을 추가로 건설 중이다.

현대오일뱅크는 2011년 가동을 목표로 하루 6만6천 배럴 규모의 중질유 탈황시설과 하루 5만2천 배럴 규모의 중질유 분해시설을 건설 중이며, 이 설비가 완공되면 고도화율이 30.8%에 이르게 된다.

이미 25.5%에 이르는 고도화설비를 갖춘 에쓰오일은 지난 9월 온산공장에 청정휘발유 원료인 알킬레이트 생산시설을 완공, 하루 9천200배럴의 알킬레이트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SK에너지는 인천공장에서 추진해온 1조5천억 원 규모의 수소첨가 중질유 분해공정(HCC) 설비에 대한 투자완료 시점을 2016년 6월로 5년 연기한다고 지난 8월 밝힌 바 있다.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하고 대체에너지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석유제품 수요가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고도화시설마저 안정적 수익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정유업계의 위기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벙커C유에서 휘발유, 경유 등 고부가가치 제품을 뽑아내 이른바 '지상유전'으로 불리는 고도화설비조차도 힘을 쓰지 못해 올해 3월 이후 복합정제 마진마저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석유 및 화학산업의 시황은 생산제품의 50~60%에 이르는 국내 정유사들의 수출물량을 좌우할 글로벌 경기의 회복 여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내년에 석유제품의 수요 증가와 정제마진 개선이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으로 보지 않으며, 신규 공급물량에 따른 재고 부담으로 제품 가격의 회복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유업계는 내년에 배럴당 70~80달러 수준에서 횡보할 것으로 예측되는 원유가격과 1천100원대로 예측되는 원/달러 환율이 실적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며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에도 대(對)중국 수출 호조와 환율상승에 따른 채산성 개선으로 호황을 누렸던 석유화학산업은 내년에도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국석유화학공업협회 김평중 본부장은 "중동의 대규모 신규 설비가 원가경쟁력 악화, 설비투자비용 증가, 자금조달 차질, 인력부족 등의 문제로 올해 정상가동되지 못해 세계시장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면서 "다만 중동에 버금가는 535만t 규모의 신규설비를 가동할 예정인 중국의 비중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본부장은 "앞으로 중국과 인도의 경제성장 속도가 석유화학 수요증가를 이끌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신재생에너지, 유전, 발전소 등의 방면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는 정유사들의 행보는 내년에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SK에너지는 전기자동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고, 자원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브라질, 베트남, 페루 등 16개국 34개 광구에서 석유를 이미 개발했거나 탐사를 진행 중이다.

GS칼텍스는 카이스트와 함께 비(非)식용 바이오매스로부터 바이오혼합알코올을 생산하는 기술의 특허를 출원하는 등 대체연료 개발에 적극적이다.

또 GS파워, GS EPS 등 관계사와 LNG복합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등 종합에너지사로 탈바꿈하고자 온 힘을 쏟고 있다.

▲SK에너지 울산공장 전경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ckchu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