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모든 생명은 낱낱이 우주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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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머니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다.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안방 농 정리를 하다가 어머니가 1955년에 쓰신 낡은 일기장을 발견했다. '7월14일 雨後雲(우후운)'으로 시작되는 어느 날 일기의 내용이 정문금추(頂門金椎)라고 할까,생명에 대한 하나의 깨달음을 전광석화와 같이 안겨주었다.
"아파서 죽을 것만 같던 두어 시간 전.아픈 배를 움켜쥐고 온 방을 뒹굴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던 약 한 시간 동안의 고통.무엇 때문에 배가 그렇게 아팠던지.애기 하나 마련하기 참 거북도 하지.10개월 동안을 모체 속에서 엄마에게 주는 허다한 고통.과연 어떤 애가 태어나 이 어미의 이때의 고통을 알아주려나. 손발은 퉁퉁 붓고 허리마저 못 견디게 아프고.어서 놓(낳)고 싶다. "
형(장남)을 배고 산통을 겪으면서 쓴 어머니의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 세상 모든 인간은,아니 모든 생명체는 어미의 오랜 고통이 있었기에 태어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낳는 괴로움만 괴로움인가. 불가에서는 태어나는 괴로움도 '생고(生苦)'라고 하여 고통으로 친다. 아기를 가진 엄마와 뱃속의 아기가 일심동체가 되어 함께 괴로움을 겪는 것 또한 생명의 신비가 아닐까.
그런데 올 한 해 우리나라에서는 생명경시 현상이 너무나 자주 일어났다. 전 대통령과 유명 모델과 사형수의 자살,'묻지마 살인',가족 간 살인,연쇄살인,독거노인의 주검 방치….
수능시험 전후로는 자살하는 수험생이 는다. 시험을 앞두고서,시험을 치고 나서,성적 발표가 난 이후에 자살하는 수험생들은 그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았던들 아까운 목숨을 스스로 거둬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강은 이 한 해 또 얼마나 많은 자살자의 주검을 안고 흘러갔는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허다한 문제 가운데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바로 생명경시 현상이다. 별것 아닌 이유로 이웃 간에,동료 간에,가족 간에 살인을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어미가 산고를 겪으면서 태어났기에 낱낱의 생명은 존귀한 것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하나가 이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우주이다. 그 우주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아픈 생명은 낫게 해야 하고 배고픈 생명에게는 먹이를 주어야 한다.
어제는 크리스마스였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상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성당과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뭇 생명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이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큰 것도 자비심과 측은지심에 담겨 있는 생명에 대한 연민의 정이다.
새해에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아픈 배를 움켜쥐고 온 방을 뒹굴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산고,배가 찢어지는 진통을 겪으면서 낳은 자식들이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목숨을 잃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예전에 썼던 졸시 한 편을 세말에 읊조려본다.
'취해서 귀가하는 어느 밤이 온다면/ 집에 당도하기 전에 꼭 한 번/ 하늘을 보아라 별이 있느냐?/ 별이 한두 개밖에 없는/ 도회지의 하늘이건/ 별이 지천으로 돋아난/ 여행지의 하늘이건/ 뼈아픈 별 몇이서/ 너를 찾고 있을 테니/ 그 별에게 눈 맞춘 다음에야/ 벨을 눌러야 한다/ 잠이 들어야 한다 아들아/ 천상의 별을 찾는다고 네 발 밑에서/ 지렁이나 개미가 죽게 하지 말기를/ 통증을 느끼는 것들을 가엾어 하지 않는다면/ 네 목숨의 값어치는 그 미물과 같지/ 아들아 네 등 뒤로 떨어지며 무수히 죽어간/ 별똥별의 이름은 없어 뼈아픈 별이기에/ 영원히 반짝이지 않는단다. '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아파서 죽을 것만 같던 두어 시간 전.아픈 배를 움켜쥐고 온 방을 뒹굴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던 약 한 시간 동안의 고통.무엇 때문에 배가 그렇게 아팠던지.애기 하나 마련하기 참 거북도 하지.10개월 동안을 모체 속에서 엄마에게 주는 허다한 고통.과연 어떤 애가 태어나 이 어미의 이때의 고통을 알아주려나. 손발은 퉁퉁 붓고 허리마저 못 견디게 아프고.어서 놓(낳)고 싶다. "
형(장남)을 배고 산통을 겪으면서 쓴 어머니의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 세상 모든 인간은,아니 모든 생명체는 어미의 오랜 고통이 있었기에 태어난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낳는 괴로움만 괴로움인가. 불가에서는 태어나는 괴로움도 '생고(生苦)'라고 하여 고통으로 친다. 아기를 가진 엄마와 뱃속의 아기가 일심동체가 되어 함께 괴로움을 겪는 것 또한 생명의 신비가 아닐까.
그런데 올 한 해 우리나라에서는 생명경시 현상이 너무나 자주 일어났다. 전 대통령과 유명 모델과 사형수의 자살,'묻지마 살인',가족 간 살인,연쇄살인,독거노인의 주검 방치….
수능시험 전후로는 자살하는 수험생이 는다. 시험을 앞두고서,시험을 치고 나서,성적 발표가 난 이후에 자살하는 수험생들은 그 한 번의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았던들 아까운 목숨을 스스로 거둬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강은 이 한 해 또 얼마나 많은 자살자의 주검을 안고 흘러갔는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허다한 문제 가운데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바로 생명경시 현상이다. 별것 아닌 이유로 이웃 간에,동료 간에,가족 간에 살인을 한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어미가 산고를 겪으면서 태어났기에 낱낱의 생명은 존귀한 것이다. 모든 생명은 하나하나가 이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우주이다. 그 우주를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아픈 생명은 낫게 해야 하고 배고픈 생명에게는 먹이를 주어야 한다.
어제는 크리스마스였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상기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성당과 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뭇 생명에 대한 이타적인 사랑이다.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큰 것도 자비심과 측은지심에 담겨 있는 생명에 대한 연민의 정이다.
새해에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아픈 배를 움켜쥐고 온 방을 뒹굴며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산고,배가 찢어지는 진통을 겪으면서 낳은 자식들이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목숨을 잃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예전에 썼던 졸시 한 편을 세말에 읊조려본다.
'취해서 귀가하는 어느 밤이 온다면/ 집에 당도하기 전에 꼭 한 번/ 하늘을 보아라 별이 있느냐?/ 별이 한두 개밖에 없는/ 도회지의 하늘이건/ 별이 지천으로 돋아난/ 여행지의 하늘이건/ 뼈아픈 별 몇이서/ 너를 찾고 있을 테니/ 그 별에게 눈 맞춘 다음에야/ 벨을 눌러야 한다/ 잠이 들어야 한다 아들아/ 천상의 별을 찾는다고 네 발 밑에서/ 지렁이나 개미가 죽게 하지 말기를/ 통증을 느끼는 것들을 가엾어 하지 않는다면/ 네 목숨의 값어치는 그 미물과 같지/ 아들아 네 등 뒤로 떨어지며 무수히 죽어간/ 별똥별의 이름은 없어 뼈아픈 별이기에/ 영원히 반짝이지 않는단다. '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