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에 가 본 일이 있는가. 겨울나무를 바라본 일이 있는가.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맨몸으로 매서운 바람을 맞고 있는 메마른 나무를.욕심을 다 버리고 가벼운 본질로만 남은 나목의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이 탓인지도 모르겠다. 며칠 남지 않은 달력을 보며 시간의 유한성을 생각하니 새삼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 는 말이다. 중세 수도사들은 늘 책상 위에 해골을 놓아두었다고 한다. 견디기 힘든 금욕적 생활을 하는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경계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소품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송년 모임과 화려하게 도심을 장식한 빛의 향연이 또다시 한 해의 끝자락을 일깨워 준다. 인간에게 시간적 구분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어찌 되었을까. 중세 수도사의 '메멘토 모리'처럼 연말이라는 시간적 한계 설정은 내게 각성제 역할을 한다. 신년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기원했던 온갖 소망과 계획들이 다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몰려온다.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왔다지만 영원히 살 것처럼 행해온 오만과 채워질 줄 몰랐던 욕심은 어찌 할 것인가. 연말은 그렇게 흐트러진 나 자신을 제 자리로 되돌리게 하는 것이다.

어느 목동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성심으로 양을 돌보던 목동이 임금의 눈에 띄어 궁에 들어가게 되었다. 성실하고 능력 있는 그는 임금의 총애로 재상의 지위까지 올랐으나 다른 신하들의 시샘을 받게 되었다. 부정축재의 혐의가 있다는 상소가 잇달았다. 하루에 한 번씩 자물쇠로 잠가 둔 골방에 들어가는 게 수상하다는 혐의였다. 임금과 신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골방을 열어 보니 금은보화가 아니라 양치기 시절의 낡은 옷과 장화가 놓여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제 그 목동이 잊지 않고자 했던 초심을 되새긴다.

얼마 전 TV에서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재래시장을 르포 취재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상인이 앞날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투리 공간에서 야채를 팔고 있는 한 아주머니의 대답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장사도 안 되고 어려우시지요?"하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괜찮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정말 호강이지요. 먹을 게 흔하고 싸고 좋은 옷도 많은데 뭐가 그리 힘듭니까. 사는 거 많이 좋아졌습니다. 힘들다면 엄살이지요. "

나는 그의 웃음 띤 얼굴에서 겨울나무의 모습을 보았다. 내년 봄은 더욱 이름다울 것이다.

심윤수 <철강협회 부회장 · yoonsoo.sim@ekos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