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예계 대세중의 한 가닥은 연예인 2세들의 활동이다. 신인 때는 부모의 후광이라며 의심을 받았지만, 이제는 어엿한 연기파 배우로, 가수로 변신하여 대중에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연예인 2세들의 한결같은 회고는 “입문은 남보다 쉽지만, 인정받기는 남보다 어렵다.”는 것.

유리한 조건 같았던 부모의 후광이 오히려 족쇄가 된다고 한다. 거목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남보다 몇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은인이 원수처럼 돌변하는 게 인생사다.

얼마 전 내가 아는 한 사업가를 만났다. 그는 매형이 경영하는 중소기업에서 20년 간 회계를 총괄담당하며 열심히 일했었다. 매형은 성실한 그에게 모든 업무를 맡기고 본인은 주로 외부 비즈니스를 하며 사업을 확장해갔다. 기업이 탄탄대로를 걸으며 성장하자 모든 공이 매형에게로 돌아갔다. 매형이 대표로 있는 회사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내심 섭섭했다고 한다.

어디를 가도 훌륭한 CEO다, 타고난 사업가다 라며 성공한 매형을 칭찬했다. 무려 20년 간 조용히 회사 안살림을 맡아왔던 그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자식에게도 낯이 서지 않았다.

마흔 중반이 되자, 자신도 당당한 오너가 되고 싶었다. 마침 친구가 좋은 아이템이 있다며 동업을 권유해왔다. 절호의 기회였다. '이제 20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겠구나.'

그는 힘들게 독립얘기를 꺼냈다. 매형은 섭섭해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독립을 허락했다. 20년 간 자기 밑에서 일한 그를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시작한 사업은 경기 불황으로 얼마 못가 망하고, 설상가상으로 매형 회사마저 부도가 났다. 매형은 그 충격에 혈압으로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매형이 죽자 크게 좌절한 그는 재기할 의욕도 없이 힘겹게 살고 있었다. "제가 매형 회사에서 나가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거목에게 너무 의지해서도 안 되지만 섣불리 벗어나서도 안 된다. 누구나 때가 오면 자연스레 자신도 거목이 되기 때문이다. 나무는 같이 크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면서 겪는 네 가지 고통이 있다.
생로병사(生老病死)와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지 못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워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古)',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오온성고(五蘊盛苦)'가 그것이다.

직장인들은 회사가 싫고, 같이 근무하는 상사나 동료들이 싫어도 함부로 직장을 옮길 수가 없다. 요즘 같은 불황에 감정적으로 사표를 썼다가 실직 기간이 길어지면 가정 또한 불안해진다. 그래서 직장인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네 가지 고통 중에서 아마 원증회고가 아닐까 싶다.

행여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훌훌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더라도, 다시 한 번 지혜로운 선택을 하시기 바란다. (hoo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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