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 '해적질'과 '해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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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미국 상원 본회의는 의료보험 개혁을 위한 독자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 내용보다는 가결하기까지의 지난한 절차가 관심을 끌었다. 상원에서만 볼 수 있는 소수당의 합법적인 '해적질(필리버스터)'과 다수당의 '반 해적질'이 마냥 부러웠다.
판세는 민주당이 내놓은 의보개혁 법안을 놓고 소수 야당인 공화당 의원 전원이 반대하는 양상이었다. 찬반토론과 연설이 25일간 지리하게 이어졌다. 공화당은 의사진행을 방해할 수 있는 소수당의 권한인 필리버스터를 행사했다. 민주당은 한시가 급했다. 관건은 전체 100석 중 찬성 60표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고 법안을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 있었다. 58석을 차지고 있는 민주당은 우여곡절 끝에 무소속을 포함, 60표를 모아 마침내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오바마 행정부의 의보개혁 입법은 5부 능선을 넘었다.
미국식 입법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상원과 하원이 각각 마련한 법안을 통과시킨 뒤 절충안을 만들어 다시 상원과 하원이 가결해야 법이 탄생한다. 상원은 중요한 길목마다 필리버스터 제도가 버티고 있다. 지난번 구제금융법을 마련했을 때나,경기부양법을 통과시켰을때 공화당은 필리버스터로 민주당의 애를 태웠다.
새해에도 첩첩산중이다. 의보개혁 법안의 최종 표결이 남아 있다. 또 금융감독과 기후변화대응 입법 등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혁법안 처리가 줄 서 있다. 공화당은 사사건건 필리버스터로 뒷다리를 걸겠다고 한다. 역설적이지만 관전자에게는 소수당을 배려하는 필리버스터 제도가 미 의회민주주의의 묘미다.
필리버스터(filibuster)의 어원은 네덜란드어로 '해적질한다(pirate)'는 의미를 갖고 있다. 회의장에서 어떤 주제로든 무제한의 연설과 토론으로 입법을 지연시키거나 아예 막아버리는 절차다. 필리버스터 행위는 고대 로마 의회에서 기원하며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미국은 1851년 필리버스터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4년 민권법안을 놓고 57일간의 필리버스터가 있었다. 의원 한 명이 최장시간 필리버스터 연설을 한 것은 1957년 24시간 18분이었다. 1930년대 한 상원의원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었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이었을 때도 필리버스터는 명가의 보도였다.
필리버스터 폐해를 막는 의회 규정(룰 22)이 도입된 시기는 1917년이다. 총 의석 가운데 3분의 2 찬성을 얻어 필리버스터 연설과 토론을 종결시키는 클로처 제도(cloture)다. 현재는 5분의 3 찬성(60표)으로 가능하다. 상원의 법안 처리 지연에 질렸는지 필리버스터를 소수당의 폭군정치라며 단계적으로 폐지하거나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우리 국회가 이런 필리버스터 제도를 수입하면 어떨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올시다"이다. 필리버스터의 핵심은 장내에서 신사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이를 종결하는 표결 결과에 야당이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국회 회의장은 내년 예산안에 불만인 야당이 점거했다. 수 틀리면 국회를 박차고 나가거나 표결장이 아수라장이 되는 게 연례행사다. 무슨 장내 찬반토론과 연설이며 표결이고 승복이겠는가. 지금으로선 '해적질'보다 '해머질'이 더 어울려 보인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판세는 민주당이 내놓은 의보개혁 법안을 놓고 소수 야당인 공화당 의원 전원이 반대하는 양상이었다. 찬반토론과 연설이 25일간 지리하게 이어졌다. 공화당은 의사진행을 방해할 수 있는 소수당의 권한인 필리버스터를 행사했다. 민주당은 한시가 급했다. 관건은 전체 100석 중 찬성 60표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를 막고 법안을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 있었다. 58석을 차지고 있는 민주당은 우여곡절 끝에 무소속을 포함, 60표를 모아 마침내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오바마 행정부의 의보개혁 입법은 5부 능선을 넘었다.
미국식 입법과정은 간단치가 않다. 상원과 하원이 각각 마련한 법안을 통과시킨 뒤 절충안을 만들어 다시 상원과 하원이 가결해야 법이 탄생한다. 상원은 중요한 길목마다 필리버스터 제도가 버티고 있다. 지난번 구제금융법을 마련했을 때나,경기부양법을 통과시켰을때 공화당은 필리버스터로 민주당의 애를 태웠다.
새해에도 첩첩산중이다. 의보개혁 법안의 최종 표결이 남아 있다. 또 금융감독과 기후변화대응 입법 등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혁법안 처리가 줄 서 있다. 공화당은 사사건건 필리버스터로 뒷다리를 걸겠다고 한다. 역설적이지만 관전자에게는 소수당을 배려하는 필리버스터 제도가 미 의회민주주의의 묘미다.
필리버스터(filibuster)의 어원은 네덜란드어로 '해적질한다(pirate)'는 의미를 갖고 있다. 회의장에서 어떤 주제로든 무제한의 연설과 토론으로 입법을 지연시키거나 아예 막아버리는 절차다. 필리버스터 행위는 고대 로마 의회에서 기원하며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미국은 1851년 필리버스터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964년 민권법안을 놓고 57일간의 필리버스터가 있었다. 의원 한 명이 최장시간 필리버스터 연설을 한 것은 1957년 24시간 18분이었다. 1930년대 한 상원의원은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었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이었을 때도 필리버스터는 명가의 보도였다.
필리버스터 폐해를 막는 의회 규정(룰 22)이 도입된 시기는 1917년이다. 총 의석 가운데 3분의 2 찬성을 얻어 필리버스터 연설과 토론을 종결시키는 클로처 제도(cloture)다. 현재는 5분의 3 찬성(60표)으로 가능하다. 상원의 법안 처리 지연에 질렸는지 필리버스터를 소수당의 폭군정치라며 단계적으로 폐지하거나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우리 국회가 이런 필리버스터 제도를 수입하면 어떨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니올시다"이다. 필리버스터의 핵심은 장내에서 신사적으로 진행해야 하고 이를 종결하는 표결 결과에 야당이 깨끗이 승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국회 회의장은 내년 예산안에 불만인 야당이 점거했다. 수 틀리면 국회를 박차고 나가거나 표결장이 아수라장이 되는 게 연례행사다. 무슨 장내 찬반토론과 연설이며 표결이고 승복이겠는가. 지금으로선 '해적질'보다 '해머질'이 더 어울려 보인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