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불문하고 가족과 가정은 최고의 안식처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디세우스는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이타케로 귀향한다. 10년에 걸친 그의 귀향길은 전쟁보다 험한 길이었다. 전쟁에서 이긴 곳에서 승자로서의 인생을 즐길 수도 있었으련만….영웅에게도 가족은 소중한 안식처인 것이다.

중국의 《사기(史記)》에는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가 전해진다. 식객 풍환과 권세가 맹상군 사이에 일어난 에피소드다. 영리한 토끼는 비상사태에 대비해 굴을 세 개나 판다는 뜻.현명한 사람은 뒷일을 대비해 여러 가지 방책을 마련해 둔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지금 정치,경제 등 모든 면에서 어렵지 않은 곳이 없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취업 때문에 풀이 죽어 있고,결혼을 앞둔 처녀 총각들은 짝 찾는 것이 걱정이다. 젊은 부부들은 아이 낳는 것이 두렵다. 아이들의 교육비와 내집 마련 걱정도 태산이다. 중장년층은 고령화 시대의 은퇴생활이 걱정이고 은퇴한 사람들은 생활비가 걱정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로 '영리한 토끼의 굴'이 세 개쯤은 필요하다. 그 하나는 가계 수입의 원천이 되어 주는 직장이다. 두 번째는 사회생활의 중요한 네트워크인 친구다. 세 번째,제일 중요한 우리의 굴은 가정이다. 그래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다.

장편 대하소설의 주인공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모습에 우리를 견주어 보거나 2시간짜리 영화에서 사랑의 감정에 몰입하며,지구의 환경문제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깡마른 소년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에서 우리는 훨씬 더 큰 감동을 느낀다. 대하소설보다 한 줄의 시에서 느끼는 감동이 더 오래 갈 수 있다. 요즈음 광고에서 이런 것을 느낀다. 바로 한국씨티은행 광고다.

한국씨티은행의 광고 중 부부간의 이야기를 먼저 보자."처음 만남은 우연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이 가족이 되고부터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을 보니 운명이었나 봅니다. 좋은 만남이 인생을 술술 풀리게 합니다. "

인생이 답답할 때 한국씨티은행은 두 번째 피난처인 친구를 찾아가라 한다. "답답할 때면 친구를 찾아갑니다. 그러면 힘든 일도 하나씩 풀리죠.고마운 인연입니다. 좋은 만남이 인생을 술술 풀리게 합니다. "

또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인생의 멘토,바로 선생님이다. 어려울 때 친구의 만남이 있었다면,기쁜 일이 있을 때는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 선생님을 찾아간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은 행운 중의 행운이다. 학창시절 선생님의 한마디가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선생님이 계셔서 참,든든해요. 좋은 만남이 인생을 술술 풀리게 합니다. "

부부,친구,선생님은 만남에 의해 형성되는 관계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간에 이 세 만남은 '인생이 잘~풀리는' 계기인 셈이다.

우연의 만남을 뛰어넘은 또 하나의 필연적인 관계는 아빠와 아들이다. 부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부자 되는 법을 전수하고 있다. 단돈 100원짜리 하나라도 아끼고 소유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100원이 모여 만원이 되고 만원이 모여야 큰 돈이 될 것이다. 아들이 흘린 100원짜리 동전을 자기것이라며 웃는 인자한 모습이 부자간의 화목을 느끼게 한다.

대부분의 은행광고는 스포츠와 연예계 스타들의 얼굴을 판다. 스타 배우가 등장하고 컴퓨터 그래픽이 2시간여를 가득 채우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인기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시들게 마련이다. 이름 모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왔던 '워낭소리'에 더 감동한 것은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감동이 있어야 확산이 된다. 확산의 중요한 미디어는 바로 구전(Word of Mouth)이다. 구전은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설득적이다. 그래서 광고는 감동을 통한 감정이입(Empathy)인 것이다. 감동을 통한 감정이입이 돼야 오래 기억되고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오주섭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